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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날리고 토해낼 뻔”…조합원 손 들어준 판결 보니[판례방]

이데일리 성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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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있는 최신 판례 공부방(58)
납입금보다 많은 전체 분담금 기준 20% 위약금
총회 의결보다 손해배상액 예정 법리 우선…공제율 대폭 감액
입주완료까지 환불 안돼? 대체자 입금 시 즉시 환불
[하희봉 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오늘은 최근 대법원에서 확정된 지역주택조합 탈퇴 시 분담금 반환과 관련된 매우 의미 있는 판결(대법원 2023다203221)을 소개하고자 한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조합에 가입했으나, 대법원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격을 상실한 조합원들이 겪는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구제해 줄 수 있는 중요한 법리적 기준을 제시하였다. 이 사건을 통해 지역주택조합의 과도한 위약금 공제 관행에 대한 법원의 시각을 짚어보고자 한다.

(사진=나노바나나)

(사진=나노바나나)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A씨 등 원고들은 울산 남구 일원을 사업구역으로 하는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하여 수천만 원에 달하는 분담금과 업무대행비를 납부했다. 그러나 사업이 진행되던 중 세대주 변경 등의 사유로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지 못하고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다. 통상적으로 지역주택조합 가입계약서에는 자격 상실 시 납입금에서 업무대행비와 위약금을 공제하고 환불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문제는 이 공제 금액의 산정 기준이었다. 피고 조합은 2019년 4월 정기총회 의결을 통해 자격 상실자에게는 업무대행비 전액과 전체 분담금 총액의 20%를 공제한 나머지 금액만 반환한다고 정했다. 여기서 핵심은 납입한 금액의 20%가 아니라, 향후 납부해야 할 돈까지 포함한 전체 분담금의 20%라는 점이다. 당시 원고들의 총 분담금은 약 3억 4천만 원 수준이었으므로, 그 20%는 약 6천8백만 원에 달한다. 여기에 업무대행비 1천만 원까지 합치면 공제액만 8천만 원에 육박한다. 원고들이 실제 납입한 돈이 5~6천만 원 수준이었음을 고려하면, 이 기준을 적용할 경우 원고들은 단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조합에 돈을 더 토해내야 하는 기막힌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1심 법원(울산지방법원 2019가합14208)은 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조합원들이 납부한 자금으로 진행되므로 조합원 이탈은 사업 수행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보고 총회에서 결의한 20% 공제 규정은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1심 판결대로라면 A씨 등은 그동안 부은 돈을 전액 날릴 위기였다.

그러나 항소심인 부산고등법원(2021나51884)과 이를 확정한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총회 의결로 정한 공제금(위약금)의 성격을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규정했다. 우리 민법 제398조 제2항은 “손해배상의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는 법원은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원은 설령 조합 총회에서 20% 공제를 의결했다 하더라도, 이는 경제적 약자인 조합원에게 부당한 압박을 가하여 공정성을 잃은 결과를 초래한다고 보았다. 특히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계약금(매매대금의 10%)을 위약금으로 정하는 일반적인 거래 관행과 비교할 때, 전체 분담금의 20%를 일률적으로 공제하는 것은 지나치게 과다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법원은 공제 비율을 전체 분담금의 10%로 대폭 감액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 덕분에 1심에서 패소하여 빈손으로 쫓겨날 뻔했던 A씨 등은 업무대행비와 위약금 10%를 제외한 수천만 원의 분담금을 극적으로 돌려받을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이 판결은 환불 시기에 대해서도 조합원들에게 유리한 해석을 내놓았다. 조합 규약이나 의결에는 신규 조합원 및 일반분양자로 대체되어 입금이 완료되었을 때 환불한다고 되어 있었다. 조합 측은 이를 근거로 아파트가 준공되고 입주가 완료되는 시점(2022년 6월경)까지 돈을 줄 수 없다고 버텼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자격 상실자의 동·호수에 대해 새로운 계약자가 들어와서 환불해줘야 할 금액만큼의 돈이 입금된 시점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즉, 대체자가 구해져서 돈이 들어왔다면 즉시 환불해야 하며, 그때부터 지연이자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지역주택조합이 총회 의결이나 단체법적 자치라는 명분을 내세워 탈퇴 조합원에게 과도한 희생을 강요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조합 가입계약이나 총회 결의가 단체행위로서의 특수성이 있더라도, 손해배상 예정액 감액에 관한 민법 법리는 여전히 적용된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해 주었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변수가 많고 기간도 길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격을 상실하거나 탈퇴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때 조합 측이 규약이나 총회 결의를 들이밀며 총회에서 20% 공제하기로 통과되었으니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더라도 지레 포기해서는 안 된다. 법원은 여전히 계약의 공정성과 형평을 중요한 잣대로 삼아 힘없는 조합원들이 부당하게 재산권을 침해받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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