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톈진에서 지난 8월 악수를 하고 있다. [AP]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제재를 앞세워 온 미국이 중국의 러시아산 LNG 수입에는 눈을 감고 있다. 제재 대상 프로젝트에서 나온 LNG가 중국으로 향하는 가운데, 중·러 거래가 ‘미국 제재의 예외’가 된 배경에 숨은 지정학적 계산이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인 ‘아크틱 LNG2(아크2)’는 러시아에서 가장 최근에 가동된 LNG 생산 사업이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쟁 자금원을 차단한다는 명분 아래 이 프로젝트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유럽 에너지 조사 업체 케플러(Kpler)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여름부터 12월 중순까지 아크2에서 총 20차례 LNG를 수입했다. 지난달에는 발트해 연안의 소규모 플랜트인 ‘폴타바 LNG’에서 생산된 물량이 중국으로 수출된 사실도 확인됐다.
이들 LNG는 모두 중국 남부 광시좡족자치구에 위치한 ‘베이하이 LNG 터미널’에서 하역됐다. 중국 전역에 약 30개의 LNG 수입 기지가 있음에도, 특정 터미널로 수입이 집중된 것이다.
미국, 왜 제재하지 않나
중국 국기 앞에서 LNG 유조선 모형이 보인다. [로이터] |
케플러의 운항 데이터를 보면, 아크2를 출발한 LNG 운반선은 북극해를 따라 동쪽으로 항해해 베링 해협을 지나 태평양으로 진입했다. 일부 물량은 북극해를 서쪽으로 돌아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베이하이 터미널로 향했다. 러시아 캄차카 반도에서 다른 선박으로 환적된 사례도 있었다.
원유 등 제재 회피 거래에서는 선박 위치를 숨기기 위해 자동선박식별장치(AIS)를 끄는 경우가 많지만, 아크2의 LNG 운송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거의 쓰이지 않았다. 이미 ‘그림자 선단’으로 분류돼 제재 대상에 오른 선박도 동원됐다.
케플러의 카타야마 쓰요시 수석 애널리스트는 “이번 LNG 운송은 숨기려는 시도 없이, 사실상 공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역시 이러한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경고 수준에 그칠 뿐, 실제 제재는 발동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한 인도에 대해 관세를 인상하거나, 이란산 원유 거래에 관여한 기업과 개인을 집요하게 제재해 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와 관련해 에너지·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의 하라다 다이스케 조사부장은 “미·러 간에 제재를 실제로 적용하지 않겠다는 묵시적 합의가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하라다 부장이 주목하는 시점은 지난 8월 미국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이다. 이 회담 전후로 캄차카 환적 시설에 정박해 있던 LNG 운반선 3척이 동시에 중국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중·러 간에는 제재 하에서도 거래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가치사슬이 이미 형성돼 있다”며 “베이하이 터미널이 제재 대상이 되더라도 중국의 LNG 수입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에너지는 압박 카드…‘완전 차단’은 아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저택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목표로 러시아에 대한 압박과 회유를 병행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유럽연합(EU)에 대해서는 러시아산 에너지와의 결별을 강하게 요구했고, EU는 2027년까지 LNG를 포함한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할 계획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북극해 에너지 개발을 둘러싼 미·러 협력 가능성도 탐색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전했다. 에너지 제재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되, 완전한 단절은 피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중국의 부상은 부담스러운 요소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이 대폭 증산 중인 LNG와 대두·밀 등 농산물의 핵심 교역 상대국이기도 하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로 미국 자동차 업계가 타격을 입은 사례도 있다.
닛케이는 이를 두고 “정면 충돌을 피하면서도 협상의 여지를 남기는 강대국 간 파워 게임”이라고 분석했다. 중·러 LNG 거래에 대한 미국의 침묵 역시, 제재와 거래를 병행하는 전략적 선택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