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탁 이상무 화백 별세 |
1970년대 동네 만화 가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만화는 ‘독고탁’이었다. 만화가 이상무(본명 박노철·1946~2016)가 그린 작품 속 주인공 이름이다.
1974년 ‘각시탈’을 그린 만화가 허영만은 “‘각시탈’로 인기가 꽤 있었지만 항상 내 위에 누군가가 있었어요. 출판사 사장이 ‘이번에도 이상무보다 책이 몇백 부 덜 나갔다’고 말합니다”(2015년 5월 4일 자 A24면)라고 회고했다.
독고탁 만화가 이상무 별세. 2016년 1월 4일자 A14면. |
독고탁 캐릭터는 1971년 만화 ‘주근깨’를 통해 처음 등장했다. 모범생 독고탁이 부모 반대 때문에 변장을 하고 고교 야구 강투수 주근깨로 활약하는 내용이다. 출간 50주년을 맞은 2021년 외동딸인 박슬기 독고탁컴퍼니 대표가 복간을 기획했다. 3년 후인 2024년 또다른 대표작 ‘비둘기 합창’과 함께 책으로 나왔다.
‘주근깨’는 복간까지 곡절이 있었다. 1971년 상·하권으로 출간했는데 상권은 만화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었지만 하권은 행방을 찾기 어려웠다. 박슬기 대표가 수소문 끝에 하권을 구입했다.
2021년 8월 25일자 A17면. |
“한 수집가와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박 대표는 곧장 달려가 만화의 의미를 설명했고, 사정을 전해 들은 해당 수집가는 비교적 저렴한 값(200만원)에 ‘하권’을 넘겼다.”(2021년 8월 25일 자 A17면)
독고탁은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로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도 끝내 이겨내는 의지를 가진 캐릭터였다. 2003년 정준영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이야기의 진행에서도, 그림에서도 이상무의 만화를 보며 느끼는 것은 편안함”이라고 평가했다.
“독고탁은 외롭다. 까치의 단짝 친구 백두산이 그에게는 없다. 독고탁은 목마르다. 하지만 그가 갈구하는 것은 한 여인의 사랑이 아니라 가족의 따뜻함이다. 독고탁은 행복하다. 마침내 그는 원하는 가족의 품을 되찾기 때문이다.”
2003년 10월 16일자 C7면. |
“1982년 작 ‘현해탄 너머’에서 이상무 만화의 전형적 구도를 확인할 수 있다. 무대는 일본이고 소재는 재일 한국인의 조국애지만 그건 그저 겉치장에 지나지 않을 뿐.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성장하는 모범생 형 독고준과, 구박받으며 진정을 외면당하는 말썽쟁이 동생 독고탁의 대립은 여느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다.”(2003년 10월 16일 자 C7면)
이상무는 야구 만화를 많이 그렸지만 축구 만화도 그렸다. 건축가 시인 함성호는 ‘울지 않는 소년’을 축구 만화의 정점이라고 평가했다.
“‘울지 않는 소년’은 단순한 축구 이야기에서 벗어나 축구를 중심으로 절망한 아버지, 피붙이인 줄 모르고 반목하는 형제, 아버지를 버린 축구협회와 그에 대한 복수로 야유를 일삼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치밀한 짜임새를 가지고 얽혀 있다는 점에서 그 전의 축구 만화와 확연히 구별되었다. 타성에 젖은 축구협회의 안일한 행정에 불만을 품은 당대의 명 스트라이커 독고룡이 속세를 떠나 지리산에 은거하면서 아들 독고탁을 한국 축구의 비밀 병기로 키운다는 줄거리이다.”(2002년 6월 25일 자 51면)
2002년 6월 25일자 51면. |
경북 김천 출생인 이상무는 1963년 고등학생 때 영남일보 어린이 지면에 네 칸 만화를 연재했다. 서울로 올라와 박기준 화백 문하생으로 들어가 1965년 ‘노미호와 주리혜’로 데뷔했다. 이상무란 필명도 이때 처음 사용했다.
부음 기사는 “최근까지 골프 만화를 연재했고 만화영상진흥원에서 회고전을 열기도 했다”(2016년 1월 4일 자 A14면)고 적었다.
[이한수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