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영국 남동부 도버에서 반(反)이민 시위에 참가한 시민이 '더 이상은 안 된다(Enough is enough)'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
지난 1일부터 이탈리아에 정착하려는 외국인들에 대한 ‘문턱’이 높아졌다. 이탈리아는 그동안 고소득 외국인들을 유치하기 위해 연간 20만유로(약 3억3900만원)의 세금을 받아왔는데, 올해부터는 이 기준을 높여서 30만유로를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외국인의 지나친 유입을 막기 위해 이 같은 세수(稅收) 증대 정책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최근 세계 각국 정부가 자국을 찾은 외국인 유학생이나 관광객에게 부여하던 각종 혜택을 없애고 자국민과 차별을 두는 제도를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각국이 앞다퉈 벤치마킹하면서 ‘지구촌’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10여 년간 아프리카·중동 이민자 유입으로 홍역을 치렀던 유럽 국가들이 외국인에 대한 문턱을 앞다퉈 높이는 양상이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현실 세계에 맞는 망명 제도를 구축해 나가겠다”며 대대적인 이민·난민 정책 개편 방침을 밝혔다. 느슨했던 영주권 요건을 강화하고, 불법 난민 추방 정책도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했다.
현재 영국 집권 여당은 진보 성향 노동당으로, 그동안 난민과 이민 정책에 대해 포용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그런 노동당이 이처럼 정책 개편 방침을 밝히자, 공개적으로 반이민·난민 노선을 주창해온 강경 우익 영국개혁당과 차이가 없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좌파 정부가 이민·난민 정책을 까다롭게 하고 있는 나라는 영국만이 아니다. 덴마크 역시 좌파 정당인 사회민주당이 정부를 이끌고 있지만, 난민으로 정착한 이들의 영주권 획득 요건으로 유창한 덴마크어 구사 능력을 포함시키고, 이민자·난민 집중 거주 지역을 강제로 철거해 재개발하는 등 출신국의 정체성을 소멸시키는 강력한 덴마크화(化)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스위스에서도 영주권자 수를 천만 명으로 제한하고, 이민 수준을 국내 노동시장 수요에 엄격하게 연동시키는 법안이 발의돼 올해 상반기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다.
각국이 글로벌 두뇌를 유치할 목적으로 외국 유학생에게 활짝 열었던 문도 닫히고 있다. 프랑스는 올해부터 모든 유학생에게 지급됐던 주거 보조금을 전면 중단하고, 유럽연합(EU) 회원국이 아닌 나라에서 온 학생에 대해선 등록금을 대폭 인상하기로 했다. 자국 학생과 외국 유학생, 외국 유학생 중에서도 EU와 비EU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한 것이다.
네덜란드도 지난해 유학생 관련 예산을 약 1억8600만유로 삭감하고, 영어 대신 네덜란드어 수업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국민의 90% 이상이 일상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네덜란드에선 학사 과정 중 절반가량이 영어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외국 유학생 입국 제한령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문턱 높이기가 두드러지고 있다. 외국 관광객이 몰리면서 주민 불편을 야기하는 ‘오버투어리즘’과 중국인들의 부동산 매입 등으로 홍역을 앓았던 일본은 강경 우파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 출범 후 외국인 규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일본은 최근 지방자치단체가 외국인을 포함한 일부 가입자에게 국민건강보험료와 연금 보험료를 최대 1년 치 선납하도록 요구할 수 있도록 했고, 미납 시 재산 압류까지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편했다.
외국인이 일본에서 회사를 설립하고 사업을 하기 위한 비자 취득에는 자본금 500만엔(약 4600만원)이 필요했는데 이를 3000만엔으로 대폭 상향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일본어 능력을 요구하는 등 진입 장벽을 높였다. 외국인이 일으키는 교통사고가 빈발한다는 여론에 따라 1일부터 외국인이 응시하는 일본 운전면허 시험의 문항 난도를 높이고 합격 점수도 높였다. 일본 정부는 유학생을 유치한 각 대학에 주던 보조금도 감축하기로 해 각 대학의 유학생 등록금은 줄줄이 오를 예정이다.
관광지로 인기가 높은 나라에서도 외국인 차별 정책이 확대되는 추세다. 일본·프랑스·이집트·태국 등은 외국인 관람객에게 내국인보다 수배 높은 요금을 부과하는 이중 가격제를 잇따라 도입했거나 도입할 예정이다. 일본은 국립 박물관·미술관 11곳에서 외국인 요금을 2~3배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집트도 최근 개장한 대박물관의 외국인 입장료를 내국인의 7~10배 수준으로 책정했다. 기자 피라미드 등 대표 관광지에서 시행한 정책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올해부터 비EU 회원국 관람객 요금을 인상하고, 이탈리아는 오는 2월부터 로마 대표 관광지인 트레비 분수에 로마 시민이 아닌 관람객을 대상으로 입장료 2유로(약 3400원)를 받기로 했다. 태국은 올해부터 외국인의 전자 입국 허가 수수료와 공항 이용비 인상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제도화하는 요인으로 고물가·저성장 등 경제난이 꼽힌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장영욱 박사는 “팍팍해진 경제 환경으로 인해 일부 내국인들이 이민자들을 경쟁자로 인식하고, 정치권은 여론에 반응해 외국인을 배척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보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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