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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정승우 기자] 한 축구 선수의 이적이 국경을 넘어 하나의 '언어'가 됐다. 영국 축구에서 '배신'으로 기억된 사건이, 한국에서는 일상어로 살아남았다. 바로 앨런 스미스의 '리즈 시절'이다.
영국 'BBC'는 1일(한국시간)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향한 한 선수의 이적이 한국어 표현을 탄생시켰다"라며 '리즈 시절(Leeds days)'이라는 말의 기원을 조명했다.
출발점은 2004년 여름이었다. 리즈 유나이티드의 성골 유스이자 상징이던 앨런 스미스가 숙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700만 파운드(약 137억 원). 리즈 팬들 사이에서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선택으로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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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는 맨유에서 3시즌을 보냈지만, 리즈 시절의 폭발력과 존재감을 되찾지 못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한국 축구 팬들 사이에서 '리즈 시절의 스미스'는 곧 '전성기'라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후 표현은 축구를 넘어 일상으로 퍼졌다.
'리즈 시절'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빛났던 때', '인생의 전성기'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흥미로운 점은 이 표현을 사용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정작 '리즈'라는 도시나 팀, 앨런 스미스라는 선수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말만 남았다.
리즈 유나이티드 한국 서포터즈와 인연이 있는 조시 와일먼은 BBC를 통해 "한국에 처음 갔을 때 이 표현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나에겐 첫 축구적 상처였던 이적이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이제는 그저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가 됐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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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현이 퍼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박지성의 존재도 있다. 스미스가 맨유로 이적한 이듬해 박지성이 같은 팀에 합류했고, 2000년대 중반 한국 내 프리미어리그 열풍과 인터넷 문화가 맞물리며 '리즈 시절'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리즈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최수(Choi Soo) 박사는 "초기에는 '지나간 시대'에 가까운 의미였지만, 지금은 젊음이나 최정점의 시기를 뜻하는 말로 진화했다"라며 "연예인, 가수, 부의 정점 등 다양한 맥락에서 쓰인다"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시절'이라는 말이 생략되고 '리즈'만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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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현은 상업 공간에도 스며들었다. 리즈 시내에 문을 연 한 한국 음식점은 아예 '리즈 시절'을 간판으로 내걸었다. 주인장은 "처음엔 뜻을 몰랐지만, 알고 나니 한국적인 정서를 잘 담고 있다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리즈'라는 이름의 술집, 피부과, 심지어 사람 이름까지 등장했다. 축구와 무관한 맥락에서 쓰이지만, 출발점은 분명히 하나의 이적 사건이었다.
리즈 팬이었던 와일먼에게 이 단어는 이제 아픔이 아니다. 그는 "한국에서 '리즈'를 볼 때마다 사진을 찍어 지인들에게 보냈다. 우리가 유명해진 것 같았다"라며 웃었다. "의미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적지만, 그 연결고리 자체가 좋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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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수의 선택, 한 팀의 상처. 그 흔적은 사라졌지만, 단어는 남았다. 한국어 속 '리즈 시절'은 그렇게 축구가 남긴 가장 기묘한 유산이 됐다. /reccos23@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