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이어지면서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낼 수 있다는 전망이 연초부터 나오고 있다.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가 핵심 격전지로 떠오른 가운데 AI 칩별 맞춤형 HBM 시장도 본격적인 성장 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추격이 빨라지면서 중장기적 위협 요인이 함께 부각되고 있다.
1일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PC용 범용 D램 제품(DDR4 8Gb 1Gx8)의 평균 거래가격은 9.3달러로 전월 대비 14.81% 상승했다. DDR4 거래가격이 9달러를 넘은 것은 조사가 시작된 2016년 6월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한 해 동안에만 가격이 6배 가까이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투자를 확대하면서 D램과 HBM,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반면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해 반도체 확보 경쟁이 심화되고, 가격 상승세도 이어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1분기(1∼3월) 반도체 공급 업체들이 지난해 말 대비 50∼60% 높은 가격을 제시하고 있다”며 “이는 지난해 4분기(10∼12월)보다 높은 상승 폭”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엔비디아가 차세대 HBM4를 탑재한 신형 AI 그래픽처리장치(GPU) ‘루빈’을 출시할 예정이어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한층 확대될 전망이다. 구글이 내놓은 텐서처리장치(TPU) 등 신규 추론용 AI 칩도 잇따라 등장하면서 고객 맞춤형 HBM 시장도 올해 본격적으로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세대인 HBM3E 수요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엔비디아의 구형 AI 칩인 H200을 약 200만 개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H200에 HBM3E가 6개씩 탑재되는 점을 감안하면 약 1200만 개 분량의 HBM 수요가 추가로 발생하는 셈이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는 올해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가 지난해보다 약 40% 성장한 2948억2100만 달러(약 426조606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중국 반도체 업체들도 이번 슈퍼사이클에 본격적으로 올라타면서 국내 업체들의 중장기 경쟁 환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신년 연설에서 AI 대형 모델과 반도체 연구개발(R&D) 분야의 성과를 강조하면서 추가 투자 의지를 밝혔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 기술 자립을 위해 약 3340억 위안(약 72조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산업 전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 메모리 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내년 HBM3E 시장 진입을 목표로 기술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외에 자국산 GPU 개발도 병행하고 있다.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도 국산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어 중장기적으로 한국 업체들의 경쟁 환경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슈퍼사이클로 국내 업체들이 단기적으로는 큰 수혜를 보겠지만, 경쟁국 업체들 역시 대규모 자금을 확보하게 된다”며 “중장기적으로는 경쟁 구도가 한층 치열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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