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막 피어나는 무렵에 시인은 길을 가다 북녘으로 향하는 옛 우편배달부를 만난 모양이다. 북위의 시인 육개(陸凱)는 이렇게 읊는다. “강남에는 별다른 것이 없으니, 그저 나뭇가지 하나에 봄 실어 보낸다(江南無所有, 聊贈一枝春).”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도 그랬다. 내란에 피폐해진 마음으로 낯선 강남 땅을 떠돌다 지인과 눈물로 해후하며 “마침 강남의 아름다운 경치, 꽃 날리는 시절에 그대를 다시 만났네(正是江南好風景, 落花時節又逢君)”라고 감격한다.
중국에서 ‘강남’은 이렇듯 ‘봄 오는 곳’의 대명사다. 그래서 숱한 시인들이 꽃 피어나는 봄의 강남을 즐겨 노래했다. 고달픈 삶의 행적을 위로받는 곳이라는 소망(所望)과 의탁(依託)의 정서도 그 안에는 오롯이 담겨 있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도 그랬다. 내란에 피폐해진 마음으로 낯선 강남 땅을 떠돌다 지인과 눈물로 해후하며 “마침 강남의 아름다운 경치, 꽃 날리는 시절에 그대를 다시 만났네(正是江南好風景, 落花時節又逢君)”라고 감격한다.
중국에서 ‘강남’은 이렇듯 ‘봄 오는 곳’의 대명사다. 그래서 숱한 시인들이 꽃 피어나는 봄의 강남을 즐겨 노래했다. 고달픈 삶의 행적을 위로받는 곳이라는 소망(所望)과 의탁(依託)의 정서도 그 안에는 오롯이 담겨 있다.
장강(長江)을 중심으로 장쑤(江蘇)와 안후이(安徽), 저장(浙江) 일부를 작게 엮는 ‘소(小) 강남’과 장강 이남을 모두 통칭하는 ‘대(大) 강남’이 있다지만,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한다는 소망과 의탁의 정서에는 차이가 없다.
명나라 구영(仇英)이라는 인물이 그런 정서를 모아 그린 그림이 ‘강남춘(江南春)’이다. 길이 7m의 대작으로 국보급 문화재였다. 이 그림을 누군가 위작(僞作)으로 판명해 헐값인 약 135만원에 자신과 관련 있는 골동품 점포로 넘겼다.
그러나 최근 한 경매장에서 약 176억원의 가격에 등장하며 사달이 났다. 그림 빼돌린 주인공은 작품을 보관했던 난징(南京)박물원의 전(前) 원장이란다. 그는 숱한 문화재를 같은 방식으로 처분해 관련 공무원들에게 뇌물로 뿌린 혐의도 받는다.
이 소식이 전해지며 중국 내 많은 박물관이 우선 문을 걸어 잠근다는 소식이다. 난징 박물원 사례가 문화계 거대 비리의 일부라는 얘기다. 겉보기에 대단한 첨단산업 육성도 좋지만, 나라의 자존심인 문화재를 제대로 돌보는 일부터 서둘러야 할 중국이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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