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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와 다발 [말글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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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멋없고 무심하고 메마른 사람. 나는 꽃을 사거나 선물을 잘 하지 않는다.(이제는 아예 못한다.) 나와 인연 맺은 사람과 이 세상을 향한 정성이 부족해서겠지. 꽃 한송이 살 정성도 없으면서 능청스레 떠드는 말과 꿈은 말장난이자 헛꿈일 뿐.



‘송이’는 꽃이나 포도처럼 한 꼭지에 매달려 둥글게 맺힌 생명을 셀 때 쓴다. ‘한송이’라고 하면 그 자체로 온전한 우주이다. 어린 나이에 생명을 잃은 이에게 ‘못다 핀 한송이 꽃’이라고 하는 것도 생명의 유일함 때문이다. ‘송이’란 말을 쓸 수 있으려면 한 꼭지에 달려 있느냐가 중요하다. 꼭지에 장미꽃이 하나만 매달려 있어도 ‘장미 한송이’이고, 포도 알갱이가 100개 넘게 달려 있어도 그냥 ‘포도 한송이’이다. 개수는 중요하지 않다. 포도알이 작고 성글어도 한송이, 굵고 촘촘해도 한송이. 난 것 그대로, 보태지도 빼지도 않은 그 자체.



‘다발’은 수상하다. ‘꽃다발’처럼 본래 따로따로인 것을 끈으로 묶어 부피를 키우고 그럴싸하게 만든 것이다. 졸업이나 생일을 축하하면서 ‘꽃 한송이’만 주면 좀 서운해할 듯. 적어도 ‘한다발’은 안겨줘야 축하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다발’은 우리에게 무엇이든 한 덩어리로 뭉쳐놓아야 ‘힘’을 쓸 수 있다고 속삭인다. 부정과 비리에도 늘 띠지로 묶인 ‘돈다발’이 오간다. 욕망의 크기는 ‘송이’가 아니라 ‘다발’로 세어지는 법.



다발 속에 묶이면 꽃은 익명이 된다. 조직이라는 다발에 붙잡히면 ‘나’라는 고유성은 사라지고 덩어리의 일부로만 보인다. 새해에도 꽃 한송이 못 사는 건 여전하겠지만, ‘다발’이 아닌 ‘송이’로 살고 싶다. 어깨에 내려앉는 눈 한송이는 얼마나 대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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