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당선자 이해준
"어? 새다!"
아정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복도 끝이다. 주변에 있던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모두 '어디? 어딘데?'라며 소란을 피워대는 바람에 시원이는 하마터면 핸드폰을 놓칠 뻔했다.
깜짝이야. 고개를 드니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 복도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시원이도 질세라 핸드폰을 손에 꽉 쥔 채로 뛰어나갔다.
삽화=이지원 기자 |
"어? 새다!"
아정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복도 끝이다. 주변에 있던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모두 '어디? 어딘데?'라며 소란을 피워대는 바람에 시원이는 하마터면 핸드폰을 놓칠 뻔했다.
깜짝이야. 고개를 드니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 복도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시원이도 질세라 핸드폰을 손에 꽉 쥔 채로 뛰어나갔다.
"진짜다!"
"어디? 아, 찾았다. 저기 있다!"
"와, 나도 볼래!"
복도 끝, 저 멀리 보이는 새는 유난히 귀여웠다. 파드득 파드득, 사람들이 다가와서 놀랐는지 이리저리 빠른 속도로 몸의 방향을 바꿔가며 유리창을 날개로 두드려대는 게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까치는 아니고, 비둘기도 아니고, 참새만 하긴 한데 아무튼 참새 같지도 않다. 아이들은 호기심에 가득 차 고개를 갸웃대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엄마한테 보낸다느니, 내일 친구한테 보여 주겠다느니 하는 말들을 두고 시원이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바보들. 사진만 찍어 두면 끝인가? 뭔지 알아낼 줄도 모르면서.
"야. 저거 직박구리야."
"뭐야, 이시원? 너 저 새 알아?"
"아니. 방금 내가 찾아냈어."
시원이는 아이들에게 핸드폰 화면을 척 내밀었다. 대화로 이것저것 질문을 건낼 수 있는 AI, 톡 지피티였다. 방금 찍은 사진을 보내고 '새 이름이 뭐야?'라고 묻자, [사진이 선명하지 않아 확실히 알아볼 수 없지만 직박구리로 보입니다.] 라고 답변한 화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와, 신기하다. 이런 것도 돼?"
"새 이름이 직박구리래. 웃기다. 킥킥."
시원이는 뿌듯해하며 아이들 손에서 핸드폰을 돌려받았다. 아정이의 반짝이는 눈과 마주치자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인 건 물론이다.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아정이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기회일지도 모른다. 같은 반이 된 뒤 한 달 내내 바라온 일이다.
시원이가 두근대는 가슴으로 서 있던 그때, 옆에서 4학년 2반 앞문이 드르륵 열렸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안경을 쓴 선생님이 고개를 쑥 내밀자, 아이들은 깜짝 놀라 '어, 선생님이다!'라고 외쳤다.
"너희들 집에 안 가고 뭐 하니?"
담임 선생님의 등장에 시원이의 어깨가 찔끔 움츠러들었다. 평소엔 유쾌한 선생님이지만, 화를 내는 목소리는 파도만큼 거세다는 걸 알아서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이미 이쑤시개처럼 뾰족해서 아이들은 변명하듯 앞다투어 대답했다.
"저희 여기서 요리랑 컴퓨터 방과후 수업 기다려요."
"복도에 새 들어왔어요, 선생님!"
"이시원이 지피티로 찾아봤는데 저 새 직박구리래요!"
"새? 새가 들어왔다고?"
선생님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복도 끝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쉬잇, 하고 검지를 입술에 대며 자분자분 말을 건넸다.
"얘들아. 새가 흥분하면 나가는 길을 못 찾을 수도 있으니까, 저리로 가 있어."
"저희 안 그래도 갈 거예요. 이제 방과후 수업 시작해요."
"그래. 알았으니까 가. 창문 좀 열어 주게."
에이,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데. 투덜대는 목소리에도 선생님은 더 말하지 않겠다는 듯 손을 휘휘 젓고는 조심스럽게 복도 창문을 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힐끔힐끔, 새가 정말 나가는지 확인하느라 자꾸 고개를 돌렸다. 배부르고 졸릴 때처럼 발이 느리게 질질 끌렸지만, 뒤를 돌아 볼 때마다 선생님이 눈을 얇게 뜨고 지켜보고 있어서 돌아갈 수 없었다.
3층과 4층으로 나뉘는 계단참에 도착하자, 지민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수업하고 나올 때까지 못 나가면 어떡해?"
"에이, 그 전에는 나가겠지."
"그치? 근데 시원이 너 톡 지피티 진짜 잘 쓴다. 어떻게 바로 찾아내냐."
마지막 칭찬에 시원이의 가슴이 단박에 뿌듯해졌다. 한두번 써봐서는 시원이처럼 자연스럽게 톡 지피티를 쓸 수 없다. 흠흠, 괜히 헛기침을 내뱉으며 시원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야. 나 이제 4층으로 올라간다. 내가 다음에는 대화하는 거랑 퀴즈게임 하는 것도 보여줄게."
"우와! 우리 그럼 목요일엔 좀 빨리 만나자!"
"그래. 잘 가."
목요일에는 더 빨리 보자는 아정이의 말에, 계단을 올라가는 발걸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매번 재미없게 느껴지던 컴퓨터 수업도 할만하게 느껴진 건 덤이다. 아니, 사실은 목요일을 상상하느라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시원이는 콧노래와 함께 가방을 정리하다가 옆자리에서 의자를 집어넣던 지민이에게 말을 걸었다.
"김지민. 우리 직박구리 나갔나 확인하고 갈래?"
"복도에 다시 가자고?"
담임 선생님의 따끔한 눈초리가 떠오르는지 지민이의 눈이 흔들렸다. 사실 혼자 가기 무서웠던 주제에, 시원이는 흔들림 없이 큰 목소리로 말을 마쳤다.
"어차피 아래층이잖아. 집에 가는 길이라고 하면 되지."
"난 안 갈래. 학원 차 타러 가야 돼. 그리고 그 새 직박구리 아닐지도 몰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선생님이 아까 창문 열면서 작게 말씀하셨잖아. 직박구리 아닐텐데, 라고."
무슨 소리지? 직박구리가 아니라니! 손을 흔들며 떠나는 지민이의 뒤통수에 대고 묻고 싶었지만, 일단은 발부터 잽싸게 움직였다. 아직 새가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가서 확인해 보면 된다.
뛰어 내려가는데도 계단은 유난히 길었다. 겨우 4학년 2반 앞 복도에 도착하자마자, 시원이는 앞으로 휙 쏠려있던 허리를 빳빳하게 폈다. 선생님이 창문을 닫다 말고 '누가 복도에서!'라는 눈빛으로 시원이를 살벌하게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시원이는 헐떡대는 숨을 삼키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새가 나갔어요?"
"그래, 시원아. 근데 선생님이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했을텐데."
"죄송합니다. 직박구리가 아직 있는지 궁금해서……"
냉큼 고개를 숙이자 선생님의 날카롭던 눈에서 힘이 풀렸다. 선생님은 손을 탁탁 털면서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직박구리? 아까 톡 지피티가 직박구리라고 그랬어?"
"네. 여기요."
시원이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대화 기록을 보여 드렸다. 선생님이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여 글자들을 읽는 동안, 시원이는 꼴깍 마른침을 삼키며 손을 꼼지락댔다.
"멀리서 찍은 사진이라 틀렸나 보다. 아까 그 새는 박새야."
쿵. 선생님의 확신에 찬 말에 이마 위로 식은땀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이상하다. 톡 지피티는 잘 안 틀리는데. 어른들이 모르는 것도 다 알려주는데. 게다가 나는 톡 지피티를 엄청 잘 쓰는데, 애들도…… 아정이도 감탄했는데.'
그럴 리가 없다. 결국 시원이는 벌컥 큰소리로 답했다.
"선생님. 근데요. 그, 톡 지피티는 엄청 똑똑한데요!"
"뭐,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잖니."
"이상하다. 박새 아닐 것 같은데. 톡 지피티는 사람보다 정확한데, 이상하다……"
시원이 얼굴은 어느새 핫팩처럼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혹시 선생님이 잘못 안건 아닐까. 아무튼 톡 지피티보다는 선생님이 틀릴 가능성이 더 높지 않나. 톡 지피티는 AI이고 선생님은 사람이니까…… 자꾸 미적대며 말끝을 흐리자 선생님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목소리는 평소처럼 쉬어 있고 표정도 그대로인데, 어쩐지 다시 교실로 돌리는 발소리가 무겁게 들렸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내일 보자 시원아."
"네. 안녕히 계세요."
어딘가 불편하고 찝찝한 기분에, 시원이는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가자마자 톡 지피티한테 대화를 걸었다.
있잖아. 아까 보낸 사진을 보고 너는 직박구리라고 했잖아. 근데 선생님은 그 새가 박새래. 뭐가 맞는 거야? 네가 선생님보다 똑똑하지 않아? 톡 지피티는 고민하는지 잠자코 있다가 와르륵 답변을 내놨다.
[똑똑하다는 것에는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선생님에게는 학교에서 쌓은 감정 교류와 지도 경험이 있고, 저는 학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거의 정확한 답변을 내놓습니다. 때문에 어느 쪽이 더 똑똑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직박구리는 박새보다 크기가 크기 때문에, 새의 크기가 작았다면 박새일 가능성이 높아요. 눈으로 봤을 때 크기가 작고 머리에 검은색이 있었나요?]
그랬던가? 크기는 사과만 하고 머리 부분이 좀 까만 건 기억난다. 그대로 적어 보내자 지피티는 다시 한번 답변을 내놓았다.
[선생님의 승리네요. 정수리에 검정색으로 덮인 무늬가 있고 크기가 작다고 하니, 그 새는 박새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사진을 보여드릴까요?]
뭐라고? 놀랄 틈도 없이, 톡 지피티는 약 올리듯 박새와 직박구리의 사진을 띄워주기까지 했다. 다시 보니 사진 속 새는 헷갈릴 수 없을 정도로 박새였다.
'말도 안돼! 애들이랑 선생님한테 얘기하기 전에 한 번만 확인해 볼걸. 이것도 제대로 못 맞히고, 확 다른 AI로 바꿔버릴까보다!'
시원이는 달달 끓는 냄비처럼 부글대며 걸었다. 뿌듯하고 자랑스럽던 기억은 다 사라지고 이젠 톡 지피티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내일은 다들 새 같은 건 홀랑 다 까먹어버렸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중얼대며 집으로 향했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을까. 자기 전에 한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다음날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칠판 앞, 첫째 줄에 앉은 아정이가 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진짜야. 저기 창문 주변에 막 날아다니면서 탁탁 부딪혔어."
"오늘도 와 주면 안 되나? 이왕이면 우리 교실로!"
"어차피 가까이에선 못 볼걸. 어제도 선생님이 새 놀란다고 멀리서 보라 하셨는데."
"그래도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것보단 가깝잖아. 히히. 아무튼 톡 지피티는 나도 다음에 써 봐야지."
시원이는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선생님께 꾸벅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이 '응, 안녕'하고 답하자 어제 오후의 일이 생각났다. 뒤통수가 근질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가슴을 벅벅 긁고 싶기도 하고. 선생님 말씀이 맞았다고 말해볼까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정이가 너무 가까이 있었다. 이 정도 거리면 분명히 대화가 들릴 거다. 아정이는 착하니까 놀리거나 하진 않겠지만…… 목요일에 톡 지피티로 놀 기회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불편한 마음에 발가락이 자꾸 구운 오징어처럼 곱아들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로 들어가려는데, 평소에는 말도 걸지 않던 아정이가 갑자기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이시원. 너 그래서 어제 다시 갔어?"
"어?"
"지민이가 그러는데 다시 가서 봤다며. 새 이름 뭐라 그랬지? 이름이 길어서 기억이 안 나. 딱따구리 같은 건데."
아정이 맞은편에 앉은 지민이까지 빤히 바라보자, 가슴이 동생 옷이라도 입은 것처럼 꼭 조여들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돼지? 박새? 직박구리? 교탁 코 옆에 있으니 선생님한테도 들릴 텐데. 시원이는 톡 지피티가 그러는 것처럼 잠시 우물대다가 우르르 말을 쏟아냈다.
"어제 복도에 다시 갔는데 새 없어서 그냥 왔어. 이름은 기억 안 나."
"그래? 금방 날아갔나 보네. 대화 기록에 무슨 새인지 써 있지 않아?"
"어. 그런가?"
"뭐야, 너 톡 지피티 잘 쓰잖아. 한번 봐 봐."
"그게…… 핸드폰이 어딨더라."
어쩌지. 지금 톡 지피티 대화창엔 사실 사진 속 새가 박새라는 것까지 다 적혀 있다. 그렇게 아는 척을 했는데, 아직 선생님께 박새가 맞다고 말도 못 했는데. 바지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두고 괜히 가방 속을 뒤적거리려는데, 뒤에서 선생님의 칼칼한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직박구리."
"네?"
"시원이가 어제 직박구리라고 알려 줬다며."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자리에 앉아 뽀득뽀득 안경알을 닦는 선생님이 보였다.
"시원이가 톡 지피티를 그때그때 잘 쓰더라. 너무 많이 쓰면 안 좋지만, 필요할 때 잘 쓰니까 좋던데. 아정이도 한 번 같이 해 봐."
"네!"
"핸드폰은 넣고, 이제 슬슬 아침 독서 시작하자."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이들도 창가에 달린 시계를 쳐다보며 자기 자리로 향했다. 지금 시간은 8시 49분, 8시 50분부터는 아침 독서 시간이다. 시원이는 후다닥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치다 말고 선생님을 빼꼼 바라보았다. 교탁 앞에 서서 책장을 넘기던 선생님은 '왜 그러냐'는 듯 눈썹을 위로 휙 올렸다.
시원이는 용기를 내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시 책장에 고개를 파묻자 정수리부터 등까지 전부 햇볕에 잘 익은 돌처럼 뜨끈하게 느껴졌다. 딩동댕동,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나서야 시원이는 푹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시원이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입가에는 풀잎만큼 얇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이해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