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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의 신 영웅전] 천하 명신 위징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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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훌륭한 신하가 명군을 만드는가, 아니면 훌륭한 주군이 명신을 만드는가? 훌륭한 재상이 왕을 보필할 수는 있지만 그 재상을 만든 것도 결국 가슴이 넓고 귀가 열린 군왕이 하는 일이니, 재상이 군왕을 낳는 것이 아니라 군왕이 재상을 알아보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더라. 동양에서 최고의 명신이 누구였느냐는 질문에 이르면 당태종의 신하였던 위징(魏徵·사진)을 든다.

위징은 호북성 사람으로 고아로 자랐으나 호학하여 젊은 날에 만권 서적을 읽었다. 왕실 형제의 난에는 장자 상속이 대의라고 여겨 당태종의 형인 이건성(李建成)의 편에 서서 싸웠으나 나라가 평정된 다음에는 당태종을 도왔다. 당태종은 서기 636년에 신하를 모아놓고 “창업한 나의 아버지가 더 어려웠을까, 아니면 조상의 위업을 지켜낸(守成) 내가 더 어려웠을까?”를 물었다. 창업 공신 방현령(房玄齡)이 창업이 어렵다고 말하자 위징은 수성이 더 어렵다고 대답했다.

이후로 당태종은 그를 깊이 믿고 그가 올리는 상소문은 병풍으로 만들어 자고 깰 때 읽었다. 위징은 창업에는 100년이 걸리는데 “나무는 뿌리가 깊어야 흔들리지 않고, 샘은 깊어야 마르지 않고 흘러 바다로 간다”고 말하면서, 군주의 현명함을 고언했다. 그런 말을 들은 당태종은 “그대는 나의 거울”이라고 말하며 고마워했다. 그런 위징이 63세에 세상을 떠나자 태종은 몸소 문상하고 비문을 지어주며, 식읍 900호를 내렸다.

서기 645년에 당태종은 천하 제패의 마지막 작업으로 고구려를 공략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머리를 돌리면서 하늘을 우러러 “위징이여, 그대가 살아 있었다면 나의 이 어리석은 정복 전쟁을 말렸을 텐데…”라고 탄식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그런 지사가 없다. 공천에 목을 매며, 물으라면 물고 짖으라면 짖으며 신병훈련소 제식훈련보다 더 정연하게 따라가는 시대를 탄식하며 이 글을 쓴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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