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
이후로 당태종은 그를 깊이 믿고 그가 올리는 상소문은 병풍으로 만들어 자고 깰 때 읽었다. 위징은 창업에는 100년이 걸리는데 “나무는 뿌리가 깊어야 흔들리지 않고, 샘은 깊어야 마르지 않고 흘러 바다로 간다”고 말하면서, 군주의 현명함을 고언했다. 그런 말을 들은 당태종은 “그대는 나의 거울”이라고 말하며 고마워했다. 그런 위징이 63세에 세상을 떠나자 태종은 몸소 문상하고 비문을 지어주며, 식읍 900호를 내렸다.
서기 645년에 당태종은 천하 제패의 마지막 작업으로 고구려를 공략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머리를 돌리면서 하늘을 우러러 “위징이여, 그대가 살아 있었다면 나의 이 어리석은 정복 전쟁을 말렸을 텐데…”라고 탄식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그런 지사가 없다. 공천에 목을 매며, 물으라면 물고 짖으라면 짖으며 신병훈련소 제식훈련보다 더 정연하게 따라가는 시대를 탄식하며 이 글을 쓴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