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햄프스티드에 있던 헌책방 ‘애서가의 모퉁이’(Booklover’s Corner). 작가 조지 오웰은 1934년 10월부터 1936년 1월까지 이곳에서 점원으로 근무했다. 현재는 빵집으로 바뀌었다. 오웰협회 제공 |
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일본의 장수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배우 마쓰시게 유타카가 채식주의자라는 소문이 돌았을 때였다. 팀원들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 그 얘기를 했다.
“응? 하지만 고기 먹는 장면 많이 나오던데요.”
“그건 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먹는 거고요. 하지만 개인 시간에는 고기를 먹지 않는데요.”
이 믿기 힘든 이야기는 나중에 결국 헛소문으로 판명된다. 그러나 그때 우리 모두는 그의 투철한 직업의식과 강인한 정신력에 감탄했고 뭔가 그를 이해한 기분이 들었다.
“뭐 우리랑 같군요.” 내가 말했다. “우리도 일할 때 말고는 책 안 읽잖아요.”
앗 정말? 하며 놀라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농담입니다. 그럴 리가 없죠. 그러나 우리가 그런 느낌을 갖고 사는 건 맞다. 그건 왜일까.
‘사실 난 책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들어왔다’는 사람을 출판업계에서 마주칠 일은 별로 없다. 여기는 중증으로 책 좋아하는 사람만 들어온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런 취향적인 것 말고 업계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인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들어오고 나면 책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고 불평하는 게 또 보통이다. 자기 안의 책벌레를 도망치게 하는 뭔가가 여기에 있다. 조지 오웰의 말은 이런 업계인의 기분을 완벽히 표현하는 듯해서 인용되곤 한다. “책에 완전히 흥미를 잃는 데는 책 업계에서 1년 지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책방의 기억들’은 오웰이 1936년에 발표한 에세이다. 그가 실제로 헌책방에서 근무한 경험을 회고하고 있다. 읽어보면 정확하게 저런 구절이 있지는 않지만 전체적 요약으로는 틀리지 않는다. 오웰은 “책에 대한 사랑을 잃었다”고 분명히 쓴다. 아이러니하게도 ‘애서가의 모퉁이’라는 곳에서 일하는 동안 말이다. 이유는 두가지인데 첫째는 책에 대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 괴로움이고, 둘째는 5천권, 1만권씩 쌓여 있는, 대체 가능한 책더미 앞에서 느끼는 질림, 또는 역겨움이었다.
이 구절이 좀 놀라운 건, 책의 저속함이 아니라 ‘많음’이 자신을 역겹게 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는 존재의 과잉 앞에서 느끼는 무기력과 역겨움을 묘사한 사르트르의 ‘구토’(1938)보다 2년 빠르다. 오웰이 책에 대해 가졌던 사랑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책 실물을 감촉하고 냄새 맡고 잡동사니에서 흥미로운 것을 찾아내는 육체적 모험에 가까웠다. 사물과의 이런 구체적이고 개인적 관계가 생업에서 유지될 방법이 있을까. 자신과의 관계 수립을 거부하는 5천권의 낯선 책 앞에서 그는 압도되고 역겨움을 느낀다. 출판사 신입 직원이 책 재고 더미의 철저한 무관심 앞에서 경험하는 충격도 이와 같다.
없음이 아니라 과잉이 사랑을 죽였다고 말하는 이 이야기의 교훈은 뭘까. 무엇이든 오래가려면 희소성을 유지하라는 것일까. 오웰은 그런 답을 주지 않는다. 생업이란 무엇을 많이 만들거나 많이 파는 일이며, 적게 해도 된다면 그건 생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신의 사랑이 생업에 완전히 파괴되기 전에 업계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웰처럼 업계를 떠날 수도 없다면 말이다. 일과 개인 사이를, 5천권과 가방 속의 한권 사이를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는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그 분리가 부디 유지되길 바라면서.
아마 그래서 우리는 촬영할 때 고기를 먹지만 여전히 채식주의자인 배우도 있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실은 그런 신기한 예가 정말로 있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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