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어둠 속 77평 밝히는 백제금동대향로… 단 한 점을 위한 전시관

조선일보 부여=허윤희 기자
원문보기
국립부여박물관 전용관 개관
77평 전시실 정중앙에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단 한 점이 놓였다. 향로 높이 62.3cm. 천장에서 떨어지는 사각 구조물이 향로를 감싸 안으며 따스하게 빛을 머금고 있다. /국립부여박물관

77평 전시실 정중앙에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단 한 점이 놓였다. 향로 높이 62.3cm. 천장에서 떨어지는 사각 구조물이 향로를 감싸 안으며 따스하게 빛을 머금고 있다. /국립부여박물관


높이 62.3㎝에 달하는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한 점이 77평 전시실 한가운데 놓였다. 짙은 회색 벽은 미세하게 기울었고, 천장에서 내려오는 사각 구조물이 향로를 감싸 안으며 따스하게 빛을 머금고 있다. 향로 뚜껑 위에 조각된 다섯 악사의 악기 소리가 공간을 채웠고, 고대 향료를 현대적으로 조향한 향기가 은은하게 퍼진다.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단 한 점만을 위한 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지난 23일 국립부여박물관에서 개관한 ‘백제대향로관’. 5년간 예산 211억원을 투입해 3층 규모 전용 전시관을 마련한 박물관은 “전시실이 아니라 건물 하나를 통째로 한 점만을 위해 조성한 첫 사례”라고 했다.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만 전시해 한국 대표 브랜드가 된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처럼, 단일 유물을 집중 감상하며 힐링할 수 있는 공간으로 관람객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백제대향로관'에 전시된 국보 금동대향로 세부 모습. /허윤희 기자

'백제대향로관'에 전시된 국보 금동대향로 세부 모습. /허윤희 기자


백제 예술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금동대향로는 백제인들이 꿈꿨던 우주의 질서가 아래에서 위로 차곡차곡 쌓인 걸작이다. 받침대에는 물을 헤치며 솟구치는 용이 연꽃 봉오리를 입으로 받치고 있고, 몸체에는 활짝 핀 연꽃이, 뚜껑에는 겹겹의 산봉우리가 펼쳐져 있다. 산봉우리 안에는 사냥하는 사람, 코끼리를 탄 사람, 수련하는 사람, 포효하는 사자, 날개 달린 상상의 동물 등이 정교하게 조각돼 있다. 확인되는 얼굴만 86개. 사람 19명, 동물 55마리, 상상의 동물 12개체가 모인 ‘생명의 숲’이다. 종적·백제삼현(三鉉)·배소·백제금·북 등 악기를 연주하는 다섯 악사의 표정, 괴수의 이빨과 코끼리의 상아까지 디테일한 묘사에 감탄이 나온다. 맨 꼭대기에서 성군을 상징하는 봉황이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굽어보고 있다.

주차장 공사에서 시작된 발굴 스토리도 극적이다. 1993년 12월 부여 능산리 절터. 몸이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 한 줌 한 줌 흙을 걷어내던 국립부여박물관 조사원 손끝에 구덩이 속 차가운 금속이 닿았다. 1400년을 진흙 속에 갇혀 있던 향로가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능산리 절터는 백제 왕실 사찰이 있던 곳. 구덩이는 기와 조각으로 층층이 채워져 향로를 단단히 감싸고 있었고, 산소가 거의 닿지 않는 습한 진흙층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 잘 보존될 수 있었다.

국립부여박물관에서 23일 개관한 '백제대향로관'. 77평 전시실 정중앙에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단 한 점이 전시돼 있다. /국립부여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23일 개관한 '백제대향로관'. 77평 전시실 정중앙에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단 한 점이 전시돼 있다. /국립부여박물관


'백제대향로관'에 전시된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연합뉴스

'백제대향로관'에 전시된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연합뉴스


단 한 번도 비행기를 탄 적 없는 국보 중의 국보다. 여러 번 해외에서 전시된 신라 금관이나 금동 반가사유상과 달리, 향로는 국외 전시 이력이 없다. 국립박물관 관계자는 “지금도 해외 박물관에서 향로를 빌려달라는 요청이 쇄도하지만, 문화유산위원회가 ‘반출 금지’로 못박은 유물이 바로 이 작품”이라며 “모나리자가 루브르박물관 밖을 나가는 걸 봤느냐, 우리도 절대 나갈 수 없는 상징적 작품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철칙”이라고 했다.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복제품에 향을 피운 모습. 봉황 가슴에 두 개의 연기 구멍이, 향로 앞뒤에 열 개의 연기 구멍이 뚫려 있다. 2019년 국립부여박물관이 향로의 정밀 재현품을 이용해 분향 실험을 했더니 향이 안정적으로 타올랐다. 백제 장인이 공기의 흐름까지 세밀하게 계산해 향이 피어오르도록 설계했음을 알 수 있었다. /국립부여박물관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복제품에 향을 피운 모습. 봉황 가슴에 두 개의 연기 구멍이, 향로 앞뒤에 열 개의 연기 구멍이 뚫려 있다. 2019년 국립부여박물관이 향로의 정밀 재현품을 이용해 분향 실험을 했더니 향이 안정적으로 타올랐다. 백제 장인이 공기의 흐름까지 세밀하게 계산해 향이 피어오르도록 설계했음을 알 수 있었다. /국립부여박물관


전시관은 향로의 구조를 본떠 구성했다. 수중 세계의 용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듯 관람객은 1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고, 향로 상부의 산악 곡선을 닮은 입구를 지나 전시관에 들어선다. 전시인테리어팀 씨원에스, 공간디자인팀 WGNB와 협업했다. 향로에 조각된 다섯 악기를 바탕으로 박백수팀(박다울·백하형기·한지수)이 만든 음악이 흐르고, 한서형 작가가 조향한 향이 퍼진다. 101도로 기울어진 벽체를 따라 일체형 의자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관람객들은 멀리 앉아서도 향로와 공간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박경은 국립부여박물관 학예실장은 “1층부터 3층 전시실까지 향로가 보여주는 물의 세계-구름의 세계-천상 세계라는 층위적 유토피아 구조를 구현했고, 향로라는 본래의 기능에 착안해 오감으로 작품을 만끽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국립부여박물관에서 개관한 '백제대향로관' 3층 복도 휴게 공간. 탁 트인 창문으로 백제 고도 부여의 경관이 한눈에 보인다. /국립부여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개관한 '백제대향로관' 3층 복도 휴게 공간. 탁 트인 창문으로 백제 고도 부여의 경관이 한눈에 보인다. /국립부여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개관한 '백제대향로관' 3층 복도 휴게 공간. 탁 트인 창문으로 백제 고도 부여의 경관이 한눈에 보인다. 벌써부터 '노을 맛집'으로 소문 났다. /국립부여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개관한 '백제대향로관' 3층 복도 휴게 공간. 탁 트인 창문으로 백제 고도 부여의 경관이 한눈에 보인다. 벌써부터 '노을 맛집'으로 소문 났다. /국립부여박물관


전시실엔 일절 설명이 없다. 대신 휴게 공간에 마련된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 작품 세부 정보와 발굴 과정, 조각 디테일까지 자유롭게 살펴볼 수 있다. 바로 옆에 조성된 체험관에선 향 기둥 안에 들어가 고대의 향을 맡아볼 수 있고, 향로에 조각된 다섯 악기 소리를 일일이 들어볼 수 있다. 휴게 공간인 복도 창문으로 백제 고도 부여의 경관을 내다볼 수 있게 했다. 박 실장은 “고도 제한이 있는 부여에는 고층 건물이 없어서 백마강까지 내려다보인다”며 “벌써부터 노을 맛집으로 소문났다”고 했다.

전시관 개관을 기념해 향로의 고화질 확대 사진과 함께 문답식으로 유물을 친절하게 소개하는 해설서도 발간됐다. 향로의 미학을 외국인들도 음미할 수 있도록 영문 번역을 함께 실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가 영문 번역을 맡았다.

[부여=허윤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차은우 탈세 의혹
    차은우 탈세 의혹
  2. 2또럼 서기장 연임
    또럼 서기장 연임
  3. 3이사통 고윤정
    이사통 고윤정
  4. 4이재명 울산 민생쿠폰
    이재명 울산 민생쿠폰
  5. 5이혜훈 부정청약 의혹
    이혜훈 부정청약 의혹

조선일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