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우 |
날짜 흘러가는 일에 무덤덤하지만, 12월 31일에는 마음이 조금 들뜬다. 길었던 1년의 끝과 또 다른 1년의 시작이 맞닿아 있기 때문일까. '시원섭섭하다'로는 부족하지만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려운, 묘하게 기분 좋은 느낌이다. 새해에 대한 기대도 빠질 수 없다. 2026년은 '포켓몬스터' 시리즈 30주년이자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 개봉, 락스타 게임즈의 'GTA 6' 출시가 예정된 해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2026년 FIFA 북중미 월드컵이 있다.
나의 첫 월드컵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태극전사들의 활약을 보며 전율을 느꼈다. 월드컵을 다시 보려면 4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열한 살 나이에 4년이라는 시간은 아득하고 길게만 느껴졌다. 그 후로 '나는 얼마나 키가 자랐을까', '어느 중학교에 다니고 있을까' 등등 4년 뒤 세상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가장 궁금한 것은 내 몸이었다. 4년 후는 그야말로 까마득한 미래였기에 오히려 근육병이 치료된 내 모습을 만화처럼 그려볼 수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상상도 했다. 그러면 월드컵만큼, 아니 월드컵보다 더 4년 뒤의 시간이 기다려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지금까지 다섯 번의 월드컵이 있었다. 나는 매번 월드컵을 기다리며 근육병이 사라진 내 모습을 상상했다가, 4년 뒤에 그 상상이 얼마나 허무맹랑했는지를 깨닫고 우울해하는 일을 반복했다. 유전자 치료 기술은 아직 갈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장벽도 많다. 그리고 이제 나는 '보통의 몸'으로부터 너무 멀어졌다. 여전히 버릇처럼 다음 월드컵을 상상하지만 내용은 예전과 다르다. 나는 병이 더 진행된 어느 미래의 나를 그려 본다. 그림 속에서 나는 침대에 누워 있다. 움직일 수 없고, 움직이고 싶은 마음도 없다.
누적되는 실패와 좌절, 상실의 경험을 통과하며 마음은 '기대를 줄이는 것이 안전하다'는 태도를 학습한다. 행복한 삶을 바라고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는 마음은 높은 확률로 무너진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러한 바람과 기대를 내려놓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열한 살의 내가 가졌던 기대와 바람은 조금씩 부서져서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순수하게 '축덕'으로서 6월에 있을 월드컵을 즐길 수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올해를 돌아보았다. 작가로서, 그리고 사진가로서 2025년은 나에게 뜻깊은 한 해였다. 첫 책을 출간했고,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과분한 기회로 지면을 얻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생각해 보면 전부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다. 행복한 삶을 바라고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는 마음은 높은 확률로 무너지지만, 때로는 이처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일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모두가 새해에는 기대에 없던 좋은 일이 많이 있기를 바란다.
하태우 작가·사진가 '휠체어에서 듣는 음악'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