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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용으로만 쓰기엔 별미인 뱀장어[김창일의 갯마을 탐구]〈139〉

동아일보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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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박물관 수장고에서 장어갈퀴를 볼 때마다 “뱀장어는 조선인의 기호식품이 아니었으므로 어획에 종사하는 사람이 없다”는 문구가 머릿속을 맴돌곤 한다. 장대 끝에 쇠로 된 굽은 갈고리를 부착해 진흙에 숨어 있는 뱀장어를 잡는 어로 도구가 장어갈퀴다. 장어긁개, 장어칼이라고도 부른다. 뱀장어는 낮에는 돌 틈이나 진흙 속으로 몸을 숨기고 밤에 활동하며, 늦가을 수온이 내려가면 개펄로 들어가 월동을 한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갈퀴를 펄 속으로 밀어 넣고 장어 몸통을 걸어 잡는다. 펄을 뒤적여서 잡는다고 하여 ‘뻘두적이’라 한다.

뱀장어는 조선인의 기호식품이 아니라는 문구는 1910년에 발간된 ‘한국수산지’에 담겨 있다. “뱀장어는 종래 조선인의 기호식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획에 종사하는 자가 없었고, 명치 27년(1894년)경 일본 어업자들이 낙동강 입구에서 뱀장어 어업을 개시하였다”고 했다. 1460년에 편찬된 ‘식료찬요’에는 “피부병, 요통, 고름, 부스럼, 중풍, 치질, 여성 대하 등 다양한 병증에 뱀장어가 쓰인다”고 했다. 더불어 뱀장어로 죽을 쑤거나 굽거나 술을 담근다고 기록했다. ‘산림경제’에는 “악창과 부인의 음부가 충으로 가려운 것을 치료한다”고 했다.

이런 기록에 근거해 조선시대에는 뱀과 유사한 외형으로 인해 음식보다는 약용으로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 하천 곳곳에서 사용한 장어갈퀴는 약용으로 쓸 뱀장어를 잡기 위한 용도였을까.

민물에서 자란 뱀장어는 번식기가 되면 자신이 태어난 바다로 떠날 준비를 한다. 강 하구 기수 역에서 두세 달 머물며 바닷물 적응기를 가진다. 그 후 6개월에 걸쳐 자신이 태어난 마리아나 해역을 향해 3000km가 넘는 거리를 헤엄쳐 간다. 암수가 떼로 모여 산란한 후 죽는다. 알은 나뭇잎 모양의 유생으로 변모해 해류를 타고 1년 가까이 북쪽으로 이동하다가 우리나라 강 하구에 도달한다.

이때는 몸의 형태가 길쭉하고 투명한 실뱀장어로 변한다. 이 실뱀장어를 잡아 1년 정도 키워 식용으로 판매하고 있다. 지금은 하굿둑에 막혀 강으로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자연산 뱀장어가 희소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지천으로 잡혔다. 강에 돌무더기를 쌓아 장어를 유인해 잡는 방식은 아직도 전남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렇듯 손쉽게 잡을 수 있었던 뱀장어를 음식으로 기피하고 약용으로만 이용했을까.

뱀장어의 맛이 탁월하다고 쓴 기록이 곳곳에 있다. ‘난호어목지’에는 “육질이 단단하고 기름기가 많아 불에 구우면 냄새가 좋으니, 꼭 해충을 죽이고 중풍을 그치게 하는 약효 때문에 귀하게 여기는 것만은 아니다”라고 했다. ‘자산어보’에는 “맛이 달콤하고 사람에게 이롭다”고 했다. 약효는 기본이고 맛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로 보아 뱀장어는 기피 음식이라기보다는 산지에서 즐기던 약성이 뛰어난 별미로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일제강점기에 뱀장어가 대량 생산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음식점 메뉴에 오르게 되었다. 1937년 7월 11일자 동아일보에는 “배암장어는 이왕에는 아이들의 병난 데나 구어먹이엇습니다. 요사이 와서는 일반으로 상등맛으로 알어 먹게 되엇습니다”라는 기사가 실려, 이 시기에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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