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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정보통신망법, 국민은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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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대한 국가권력의 직접규제
'표현의 자유' 심각한 위축 우려
개정안이 제시한 법률적 개념 모호
법률적 판단의 혼돈·국민불신 불러
美 등 전 세계 뉴스·정보 팩트체킹
공권력 아닌 민간기관 자율에 맡겨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대학 교수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대학 교수

지난주 여당 주도하에 국회에서 가결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30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새해 정국 기상도에 먹구름을 예고하고 있다. '허위조작정보근절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정보통신망 내에서 허위·조작정보의 유통을 금지하기 위한 것이다. 법안이 발효되면 특정 개인이나 집단차별을 선동하는 정보, 증오를 조장해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정보 등을 불법정보로 규정해 유통을 금지한다. 누군가에게 손해를 가할 의도 혹은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공익을 침해하는 허위·조작정보 유통도 역시 금지된다.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두 번 이상 계속되면 최대 1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정보통신망을 통해 유통되는 언론, 지식 및 정보 플랫폼, 소셜미디어의 콘텐츠에 대한 강력한 검열과 철퇴에 대해 보수와 진보 진영의 언론은 물론 시민단체들도 모두 한결같이 반대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째,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다. 18세기 미국 독립선언서, 프랑스대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이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중요한 권리 중 하나로 받아들여져 왔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은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 표출에 대한 제약을 의미하며, 이는 곧 획일적·전제 사회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 언론이 정부와 여당이 추구하는 소위 국민주권시대에 과연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개정안이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점에 대한 재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개정안이 제시하고 있는 법률적 개념들의 정의가 극도로 모호하다. 허위, 조작, 차별, 증오, 인간 존엄성, 공공이익, 침해 등 어떤 개념도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채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는 점에 말문이 막힌다. 이는 헌법이 적시한 법률의 명확성의 원칙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정교하게 정의되지 않은 법률적 개념은 추후의 행정적·법률적 판단의 혼돈, 나아가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의 문제를 불러올 것이 자명하다. 정확한 측정도구 없이 정교한 실험연구를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악마는 항상 디테일에 있다. 모든 사회적 언명과 진술의 '사실'과 '의견'에 대한 명확한 구별과 정의가 디테일에 대한 논의의 선행요건이 되어야 한다. 1980년대 미국 언론이 시작한 '팩트체킹'이 왜 진실의 문제에 대한 의견 영역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고 유보하면서 팩트, 즉 사실의 검증에만 집중했는지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의견의 진위에 대한 판단, 즉 진실의 문제에 대한 판단은 매우 논쟁적이며 대부분의 경우 명확한 검증과 그 결과의 합의가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견의 영역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관용도를 조금 더 높게 봐야 한다. 한편 의견을 뒷받침하는 팩트, 즉 사실의 영역에서는 엄격한 기준에서의 진위 검증, 즉 허위와 조작을 가려내는 사실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 이로 인해 소모적인 정치적 논쟁을 피할 수 있고, 또한 궁극적으로는 의견 영역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지킬 수 있다.

셋째, 언론, 지식 및 정보 플랫폼, 소셜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국가권력의 직접규제는 그 자체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콘텐츠의 내용 규제는 사업자의 자율규제에 맡기는 것이 순리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뉴스와 정보 팩트체킹이 국가 공권력이 아닌 자율적 민간기관에 맡겨진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뉴스와 정보의 유통 영역에도 분명히 혁신은 필요하다. 때에 따라 판을 흔드는 본질적 변화도 필요하지만, 이것이 항상 능사는 아니다. 사회구성원의 정서에 맞는 변화의 절차적 정당성, 그리고 현재는 물론 미래 사회도 고려한 변화의 지속가능성도 중요하다. 연말까지는 사법개혁과 언론개혁을 단행하리라는 더불어민주당 강경파의 조급한 단견이 불러온 이번 개정안 통과는 그 과정과 미래를 모두 무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시도다.


민간 규제기구가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진행해야 할 일을 정치 권력이 급행열차에 태워 보내면 시원하게 해결될 것이라 보는 것은 지나치게 급진적인 발상이다. 질주하는 급행열차가 탈선사고를 내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이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다음은 주권 국민이 거부권을 행사할 차례다. 표현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가 먹고 사는 소중한 산소이기 때문이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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