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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깨어서 기억하는 동안은 잊히지 않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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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단편소설] (16) 김의경 ‘철야’ ― 독립운동가 박차정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소현과 하나가 무작정 부산에 도착했다며 전화를 걸어왔을 때 정미는 겉옷만 걸친 채 곧장 역으로 나갔다. 거리는 벌써 어둑했다.

정미를 마주치자마자 소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쌤한테 간다고 하니까 허락해주셨어요.”

반면 하나는 부모님 허락도 받지 않고 그냥 왔다고 했다. 정미는 그 자리에서 하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다렸다는 듯 어머니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하나가 전화를 안 받아서 소현이한테 연락했더니 문예반 선생님하고 문학기행을 간다고 하더라고요. 정말인가요?”

정미는 얼버무리듯 대충 둘러대고 전화를 끊으려 했지만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선생님, 하나가 요즘 아빠와 냉전 중이에요. 잘 달래서 아빠 말도 좀 들어보라고 해주세요.”

전화를 끊은 다음 정미는 두 아이를 보며 웃었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고 가. 내일 점심쯤엔 집에 보내겠다고 말씀드렸어.”


소현과 하나는 서로 끌어안으며 기뻐했다. 두 아이는 정미가 지도하는 문예반 학생이었다. 방학을 맞아 어머니 집에 내려올 때 부산 구경하고 싶으면 한번 들르라며 인사치레로 건넨 말이 씨앗이 되어버릴 줄은 몰랐다.

“이렇게 갑자기 오면 당황스럽잖아. 미리 말하고 일찍 왔으면 제대로 구경시켜줬을 텐데.”

저녁 시간이라서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정미는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갔다. 팔순이 넘은 어머니가 정성껏 밥을 차려주셨다.


정미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앞서 걷던 소현이 뒤돌아보며 투덜댔다.

“쌤, 대체 어디 가는 거예요? 너무 더워요.”

두 아이는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왔다. 정미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거의 다 왔어. 저기야.”

정미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동상이 하나 서 있었다. 소현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오, 멋진데? 총을 든 여자 동상은 처음 봐. 군인인가봐.”

동상으로 다가간 하나가 동상을 떠받친 좌대에 새겨진 글자를 읽었다.

“박차정 의사상?”

소현이 동상 근처에 놓인 표지판을 들여다보며 글자를 더듬었다.

“한국 여성 독립운동의 거목으로 활동한 점이 인정되어…… 쌤, 너무 모범생 코스잖아요.”

“문학기행 간다고 한 건 너였잖아.”

“독립운동가하고 문학기행이 무슨 상관이에요?”

하나는 동상을 멀거니 올려다보며 말했다.

“근데 저 처음 들어봤어요.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데 왜 몰랐을까요?”

“덜 알려졌지만 박차정은 유관순 못지않은 독립운동가야. 부산 동래 출신이어서 여기 금정문화회관 옆 ‘만남의 광장’ 부지에 동상이 세워졌지. 독립운동가 가문에서 자랐고 두 오빠 모두 독립운동을 하다가 형무소에서 감옥살이를 했어. 차정은 글을 잘 썼대. 나혜석 작가가 교지에 실린 글을 읽고 찾아가서 작가가 되라고 격려했을 정도로. 박차정이 쓴 《철야》는 겨울날 옥사한 독립투사의 아들딸이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며 밤을 밝히는 이야기로 박차정의 자전소설이야.”

정미도 조용히 동상을 올려다봤다. 오래전 은사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박차정은 등단보다 나라의 독립이 먼저라고 했대.”

하나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나혜석이라면 경성을 발칵 뒤집어놓은 그 나혜석요?”

하나는 지난 학기 문예반 친구들과 함께 나혜석의 소설과 수필을 낭독했다. 소현이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하긴, 문학은 힘이 없으니까요.”

하나가 소현에게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문예반 친구들끼리 자조적으로 하던 이야기였다.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데 글을 쓰면 뭐 하냐고, 글을 쓰더라도 취업이 잘되는 학과로 진학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아이들에게 정미도 작가의 꿈을 밀고 나가라고 섣불리 조언할 수 없었다. 정미는 문예반 학생들에게 글을 쓰라고 독려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소설가로 등단해 5년 전 책을 한 권 출간한 이후로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하나는 아이스크림을 혀로 핥으며 말했다.

“힘이 있다 해도 사람들에게 닿으려면 시간이 걸릴 거 같아. 그래서 박차정 의사의 선택이 이해가 돼. 나라도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오빠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가면 혼자 방 안에서 글만 쓰고 있을 순 없을 것 같거든.”

정미도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고 말했다.

“박차정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해서 감옥에 들락거렸어.”

“어린 여학생이 무장투쟁을요?”

“남자보다 총을 더 잘 쐈다고 해. 졸업 후에는 의열단에서 무장투쟁을 벌였고 항일여성운동단체인 근우회에서는 중심인물로 활약하며 독립운동을 이어갔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정미는 어머니와 함께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곳에서 만난 은사님은 지금의 정미 또래였던 국어 선생이었다. 수능을 앞두고도 틈틈이 소설을 써 건넸던 정미에게 선생님은 박차정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려줬다. 문학에 재능이 있었던 어린 학생이 항일학생운동의 선봉에 서서 호된 고문을 당하고 감옥살이를 했다는 이야기는 기억에 강하게 남았고, 이후로 정미는 박차정의 작품을 찾아 읽었다.

하나는 1학년 때부터 줄곧 여군이 되기를 꿈꿨다. 체대에 진학해 여군 장교가 되겠다는 하나에게 아버지는 군인의 삶은 생각보다 더 힘들다면서 사범대에 진학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하나가 자신의 꿈을 접고 아버지의 말을 따를 리는 없지만 얼굴이 해쓱한 걸 보면 마음고생이 심한 것 같았다. 문예반 활동에 가장 열의를 보이던 소현도 급격히 나빠진 가정 사정으로 고민이 많았다. 언니와 오빠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나선 상황에서, 자신만 시를 쓰겠다고 대학에 가는 건 사치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이스크림이 막대를 드러낼 즈음 하나가 물었다.

“선생님, 목숨 바쳐가며 나라를 지켰는데 젊은 나이에 죽고 이렇게 외롭게 홀로 서 있으니 박차정이 얻은 게 뭐예요?”

정미는 말없이 웃었다. 그에 대한 답은 소현과 하나가 살면서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나라의 아들딸들이 독립된 나라에서 자신이 선택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한 것. 그것이 박차정의 바람 아니었을까. 정미를 비롯해 소현, 하나 그리고 박차정 의사의 동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바로 그녀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새벽 세 시, 한밤중에 잠이 깬 정미는 아이들 방문을 열었다가 숨이 멎을 듯 놀랐다. 침대가 비어 있었다. 정미는 즉시 하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지금 어디냐고 물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하나가 아닌 소현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쌤, 우리 지금 차정 언니랑 같이 있어요.”

정미는 전화를 끊자마자 동상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정미는 동상 앞에서 아이들의 실루엣을 보고 안도하며 숨을 삼켰다.

“위험하게 새벽에 뭐 하는 짓이야?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소현이 웃으며 말했다.

“한 시쯤? 그냥 잠이 안 와서요. 침대에 누워서 《철야》 이야기를 하다가 나왔어요. 오늘밤 우리도 밤을 새우며 차정 언니 곁에 있어주면 어떨까 해서요.”

하나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깨어서 기억하는 동안은 잊히지 않는 거잖아요.”

“어서 가자. 너무 늦었어.”

하나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곱씹어보니 뭉클했다. 소현과 하나는 동상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은 뒤 마지못해 일어났다. 그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정미를 앞질러 나아갔다. 정말 사범대 갈 거야? 아니, 절대로. 원하는 학과에 못 갈 바엔 대학 안 갈래. 난 대학에 가건 안 가건 꼭 시를 쓸 거야. 재잘대는 아이들의 목소리 너머로, 입술을 앙다문 박차정의 모습이 겹쳐졌다.

공동 기획: 조선일보·국가보훈부

/독립기념관박차정(왼쪽)과 남편 김원봉

/독립기념관박차정(왼쪽)과 남편 김원봉


박차정(1910~1944)

부산 동래 출생. 1927년 설립된 전국 여성단체 근우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출판, 선전 업무를 담당했다. 근우회 활동으로 일제에 의해 체포됐다가 석방됐지만 감시가 이어지자 1930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김원봉이 주도하던 의열단에 합류, 김원봉과 결혼했다. 중국에서 일본 침략을 규탄하는 방송과 기고 활동을 벌였고, 무장단체인 조선의용대에도 참가했다. 전투 중 입은 부상 후유증으로 1944년 사망했다.

/김의경 인스타그램소설가 김의경

/김의경 인스타그램소설가 김의경


소설가 김의경

2014년 한국경제신문 청년신춘문예에 장편소설 <청춘 파산>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콜센터>로 수림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헬로 베이비>, 소설집 <쇼룸>, <두리안의 맛>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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