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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카타르 실용 외교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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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장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장


중동에는 실용 외교를 내세운 나라가 꽤 있다. 워낙 분쟁이 잦고 국가 간 갈등 구조가 복잡한 지역이라서 최대한 다른 나라와 척지지 않고 어느 한쪽에도 서지 않으며 균형점을 찾으려는 계산이 작동한 것이다. 이들 나라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이란 갈등 중재에 나서기도 하는데 카타르·튀르키예·이집트·아랍에미리트(UAE)·사우디아라비아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카타르는 최근 5년여간 실용주의 기치 아래 역내외 여러 갈등을 중재하고 위기 국면을 조정하며 존재감을 키워왔다. 2020년 트럼프 1기 정부와 탈레반의 평화 협상을 성공적으로 중재했고, 2021년 탈레반이 재집권하고 미군이 극도의 혼란 속에서 철수한 뒤 현지에 남은 미국 민간인의 탈출을 도왔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에는 유럽의 긴급 요청에 따라 가스 공급을 늘려 러시아산 가스 공백으로 인한 시장 불안을 누그러뜨렸다. 2024년에는 한국에 동결돼 있던 이란 자금 약 60억달러를 인도적 목적 자금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스위스와 함께 중재 통로를 제공했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일어난 후에도 휴전 협상의 핵심 중재국으로 활약했다.

카타르의 외교 성과는 누구와도 잘 지내려는 실용주의에 철저히 기댄다. 카타르는 역내 최대 규모의 미군 기지를 유치한 대표적 친미 국가인 동시에 반미·반이스라엘을 외치는 하마스와 탈레반 정치 사무소를 자국에 두고 있기도 하다. 이란과도 긴밀한 대화 채널을 유지하며 제재로 고통받는 이란 경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물론 중국과도 에너지·첨단기술·안보 협력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상충할 수 있는 관계를 동시에 유지하는 배경엔 막대한 천연가스 수입에 기반한 풍부한 왕실 재정이 있다. 특히 카타르 재단은 미국의 주요 교육기관과 싱크탱크 커뮤니티에 장기간 기부를 통해 협력 관계를 이어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카타르 외교부가 주최하는 연례 국제회의인 도하 포럼에는 미국과 유럽의 전직 관료와 전문가가 이란 출신 인사나 탈레반 대표와 함께 참여하는 재미난 광경이 연출된다.

이런 카타르가 올해 두 차례나 이웃 나라의 미사일 공격을 받으며 큰 충격에 빠졌다. 건국 이래 처음 겪는 일이었다. 6월 이란은 미국의 자국 핵시설 타격에 대한 보복으로 카타르 내 미군 기지를 직접 공격했다. 이란의 공격 직후 도하 시내 쇼핑몰에서 사람들이 혼비백산해 뛰어다니는 영상이 퍼지며 당시의 공포를 여실히 보여줬다. 카타르는 이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이유로 2017년 아랍 걸프 형제국인 사우디아라비아·UAE·바레인으로부터 봉쇄를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란은 대미 보복 명분만을 앞세워 카타르의 주권을 침해했고 카타르는 강하게 반발했다. 9월에는 이스라엘이 하마스 지도부 제거를 명분으로 도하 외곽에 있는 하마스 정치 사무소를 타격했다. 발표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미군 방공망을 우회해 공격을 감행했고 카타르는 격렬히 항의했다. 미국은 유감을 표했으나 카타르의 충격과 불안을 달래긴 어려워 보였다.

카타르가 두 차례나 폭격을 맞았다는 사실은 실용 외교가 안전하다는 통념이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다. 국제 질서와 안보 환경은 순식간에 뒤집힐 수 있고 냉혹한 국제 정치에서 모두의 신뢰를 얻는 외교는 존재하기 어렵다. 특히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고 중·러·이란·북한(CRINK)으로 묶이는 권위주의 연대의 공세 행보까지 두드러지면서 많은 나라는 명확한 선택을 강요받는다. 호전적인 국가들 사이에 낀 나라일수록 분명한 원칙에 기반한 확고한 동맹이 국익을 지키는 방패가 될 수 있다. 카타르의 실용 외교는 바로 이 지점에서 흔들렸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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