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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과 비관 사이… 거인의 어깨에 올라 미래를 내다보다

매일경제 김유태 기자(ink@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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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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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생각보다 빠르게 우리 눈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걸 알아보는 이는 소수였으며, 다수의 대중은 이미 당도해버린 미래를 너무 늦게 인지하고 뒤늦은 해석을 내리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낙관과 비관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도 전에 그 미래는 일상화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창조한 거인의 책들과 이미 도착한 미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책들을 모았다.

엔비디아 젠슨 황, 생각하는 기계

전기 작가 스티븐 위트가 '저자'지만, 엔비디아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젠슨 황의 '요청'으로 집필된, 세계 최초의 '젠슨 황 공식 자서전'이다. 25년간 젠슨 황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기업가로서 그의 생애에 매료됐고, 2001년 엔비디아가 S&P500지수에 편입됐을 때 엔비디아 주식을 사기도 했던 저자는 젠슨 황의 자서전 집필 요청을 받은 뒤 누구보다 가장 놀랐다고 회고한다. 저자는 무려 3년간, 정확히는 '1095일' 동안 엔비디아의 내외부 인물 300여 명을 밀착 취재하고 젠슨 황과 대화하며 이 경이로운 책을 써냈다. 평범한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던 젠슨 황이 그를 상징하는 가죽 재킷을 입는 모습으로 변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엔비디아를 빼놓고는 2025년 전 세계의 산업계 지형을 설명하기 어려운 가운데, 비디오게임 하드웨어 시장의 틈새 기업에 불과했던 엔비디아는 오늘날 기업 가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칩 제국의 승자'로 도약했다. 이민자 출신이었고 한때 '왕따'를 경험했으며, 레스토랑의 웨이터 아르바이트생 신분이었던 젠슨 황은 한발 먼저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과 비전으로 우리의 오늘을 선점했다.

책은 그가 다녔던 가난한 시골 학교에서 시작해 2025년 오늘의 젠슨 황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책이 흥미를 더하는 지점은 한 CEO의 성공 신화를 넘어서서, 그 과정에서 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집요함의 절정을 전부 포착해낸다는 점에 있다. 미래만을 고집했던 한 인간의 경이로운 여정이 한 권에 담겼다. 저자는 젠슨 황을 이렇게 평가한다. "젠슨 황에게 있어서 인공지능(AI)은 순수한 진보의 힘이며, 그는 AI가 새로운 산업혁명을 촉진하고 있다고 선언한다." 스티븐 위트 지음, 백우진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소스 코드: 더 비기닝


'빌 게이츠의 첫 번째 회고록.' 이 한 줄의 설명만으로도 이 책을 묵독할 가치는 충분하다.

1971년 소년 빌은 디지털 이큅먼트사에서 만든 컴퓨터 'PDP-8'을 이용할 기회를 얻었다. 크기가 작았지만 무게는 36㎏이나 됐고, 가격은 무려 8000달러였다. 빌은 이미 컴퓨터라는 새로운 세계에 입문한 상태였지만 PDP-8은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빌은 베이식(BASIC) 프로그래밍 언어 버전을 작성해보기로 결심하고, 코드를 하나하나 머리에 떠올리며 컴퓨터가 자신의 명령을 어떻게 수행해낼지를 상상했다. 하지만 기계 주인이 PDP-8을 가져가면서 빌의 '베이식 프로젝트'는 미완성으로 남았다.

그러나 3년 뒤 새 컴퓨터가 출시되면서 빌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고, 당시 떠올렸던 코드의 기억이 그의 두뇌 속에서 어른거렸다. 코드를 떠올렸던 작은 경험, 이것이 세상을 바꾼 마이크로소프트의 '씨앗'이 됐다.


이 책에서 게이츠는 자신이 지나온 길을 여과 없이 들려준다. 그는 "만약 내가 오늘날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다면, 아마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았을 것"이라고도 쓴다. 그러나 컴퓨터라는 사물은 정신적인 부주의를 그에게 용납하지 않았으며, 논리적인 일관성에 따라 세부 사항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조용히 지시하는 사물로 기능했다. 그런 집념의 요구 덕분에 게이츠는 오늘에 이르렀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는 저자의 고백은 이 회고록이 얼마나 정직한지, 그가 자신을 얼마나 신화적인 인물로 포장하려 하지 않는지를 말해주기도 한다. 이 책은 애초에 예정됐던 성공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간명한 진실을 동시에 전한다. 빌 게이츠 지음, 안진환 옮김, 열린책들 펴냄.

먼저 온 미래


2026년은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바둑 AI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국이 10년째 되는 해다. 당시만 해도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패하리란 예상은 결코 대세가 아니었고, 이후 10년간 AI가 인간만의 영역을 이렇듯 빨리 잠식, 아니 침식하리란 예상 역시 소수들의 상상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런 예상들은 완전히 빗나갔고, 세상은 그야말로 격변의 시대를 경험했다.

저자는 이 9단과 알파고의 승부가 벌어진 2016년을 기억하면서 이렇게 쓴다. "난 바둑계에 미래가 먼저 왔다고 생각한다." 바둑기사들은 이제 AI 없이는 수를 연구할 수 없을 만큼 AI와 친연관계를 맺었는데, 그런 점에서 저자는 바둑기사들은 "AI 이후의 세계를 '먼저' 경험한 사람들"로 재정의하기도 한다.

전현직 프로기사 30명을 심층 인터뷰해 책을 써낸 저자는 바둑계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AI를 경험하게 되리라 전망한다. 특히 저자의 관심은 문학에 집중돼 있다. AI가 소설을 쓰는 시간을 '5분'이라고 볼 때, AI가 소설을 하루 288편을 쓴다면(1440분÷5분=288분) 소설가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를. 아니, 288편도 모자라 AI가 스스로 개발한 알고리즘으로 2만8800편씩 써내거나, 아니면 한 편의 장편소설인데 그 한 편이 무려 2만8800권 분량이라면, 소설가라는 '직업'은 유지될 수나 있을까.

AI 할 수 있는 영역과, 할 수 없는 영역은 과연 분리가 가능한 문제이긴 할까. 창의성은 오직 인간만의 것이라 여기는 생각이 인간의 오만일 수 있음도 저자는 지적한다. 인간만이 이 세상에 '의미'란 걸 남길 수 있다는 믿음도 깨져버린 시대, 이 책은 '먼저 온 미래'를 경험한 바둑계를 렌즈 삼아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의 인간을 질문한다. 장강명 지음, 동아시아 펴냄.

강제 구독의 시대

AI 기반 서비스의 구독경제는 2025년 핵심 수익모델이었다.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의 수익도 전체 매출의 75%가 소비자 구독에서 발생하고 있다. 과거엔 신문이나 우유 정도를 구독하던 세상이었지만 이제 가전제품, 의류, 식품 분야도 구독의 시대에 진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독경제 기업은 S&P500 기업보다 3.4배 빠르게 성장 중이며, 세계 구독경제 시장은 1조5000억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UBS).

문제는 이러한 구독경제가 과연 소비자의 자발적 선택에 따른 결과인지다. 온라인스트리밍서비스(OTT), 음악, 게임, 배달, 식품, 자동차 등 실생활과 밀접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구독은 '소비의 시대정신'으로 굳어졌다. 저자는 일상을 뒤흔든 구독경제의 심연을 비판적으로 응시하면서 소비자가 직접 선택한 구독과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구독을 분류하고, 강제화된 구독에 우리가 비판 없이 물들어버린 건 아닌지를 본원적으로 질문한다. 마치 선택지가 눈앞에 놓여 있어 자유롭게 구독을 결정한 것 같지만, 그 뒤에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독이 소비자를 자유롭게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판단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비판이 책에 담겨 있다.

과거 커피 한 잔 값에 불과했던 구독료는 소비자들의 익숙함에 기대 우리들의 지갑을 털어가기도 한다. '구독플레이션'이란 신조어가 이러한 세태의 반영이 아니던가. 이 책은 지금이라도 구독을 끊어야 한다는 직접적인 비판이 아니라, 관성화된 구독 문화에 대한 우리들의 사유를 요구하고 있다. 인간이 효율 때문에 구독을 선택한 게 아니라 구독경제에 인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편입돼버린 건 아닐까. 전호겸 지음, 베가북스 펴냄.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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