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꼼수로 버티는 쿠팡, 엄정한 조사로 책임 물어야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보상으로 1인당 5만원 쿠폰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총 1조6850억원에 달하는 규모지만 소비자 반응은 싸늘하다.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은 사실상 1만원 수준으로 그마저도 물건을 사야 쓸 수 있어 판촉 쿠폰과 다를 바 없다. 피해에 대한 책임이나 진정성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보상 방식은 속이 뻔히 들여다보인다. 5만원 쿠폰은 쿠팡 상품과 배달 서비스, 여행·명품 전용관으로 쪼개져 있는데 여행이나 명품 플랫폼은 소비자들에게 생소하다. 그런 곳에서 쓰려면 상당한 액수의 소비를 해야만 쓸 수 있다. 쿠폰의 현금 전환은 물론 포인트 대체도 불가능하다. 탈퇴 회원은 다시 가입해야만 사용할 수 있다.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에게 실질적 보상을 하기보다는 쿠팡을 이용하게 만들려는 꼼수 마케팅일 뿐이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한 달 동안 쿠팡이 보여준 태도는 책임 있는 기업과 거리가 멀다. 정부 조사나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 쿠팡은 “실제 유출은 3000명에 불과하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일방적으로 발표했고, 그 근거와 조사 과정은 공개하지 않았다. 유출 정보는 모두 회수됐고 추가 피해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천문학적 배상 책임과 국내외 집단소송을 의식해 피해 범위를 선제적으로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키운다. 실질적 총수인 김범석 쿠팡Inc 의장도 청문회를 앞두고 뒤늦게 사과문을 내는 등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매출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올리는 기업 총수의 자세로 보기 어렵다.

쿠팡의 오만한 태도는 국내 유통 시장에서 사실상 대체재가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는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을 걸어놓고, 플랫폼 기업은 무제한 영업이 가능하게 한 바람에 ‘공룡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노동·안전·개인정보 관리에 반복적으로 문제가 생겼는데도 시장 지배력을 믿고 여론과 국회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게 된 것이다. 미국 상장사라는 점을 내세워 규제와 책임을 교묘히 피해가고 있는 것도 문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규모와 영향력이 클수록 더 무거워야 한다. 개인정보 유출 경위와 피해 범위부터 투명하게 규명하는 것이 우선이다. 유출자 기기에 대한 포렌식 결과와 2차 피해 가능성까지 투명하고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셀프 해명이나 보여주기식 보상으로 덮을 문제가 아니다. 근로자 관리·감독 책임과 김범석 의장의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의 실질적 경영 참여 여부에 따른 공정거래법상 동일인 지정 문제도 엄정하게 따져야 한다. 아울러 취지와 달리 전통시장도 살리지 못하고 경쟁만 왜곡해온 대형마트 영업 제한 규제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