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우 호서대 특임교수 |
중국의 인공지능(AI) 산업의 발전 배경에는 공산당 정부 역할의 요인만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가치관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중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실용적 가치관과 배금주의(拜金主義)적 성향이 주요 요인이다. 이는 젊은 인재들이 첨단산업으로 몰리는 현상을 심화하는 주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 인민들은 사회정의나 공공선보다는 경제적 성취를 우선 가치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러한 현실주의적 가치관은 이공계, 특히 AI와 정보기술(IT) 산업 분야로 젊은 인재들이 집중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첨단 기술 산업에 참여하는 것은 곧 부(富)와 사회적 성공을 보장한다는 현실적 인식이 강하다. 그 결과 AI 기업 취업이나 창업은 젊은 세대에게 가장 유망한 경로로 자리 잡았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라는 중국의 전통적 속담이 상징하듯, 황금 만능주의 사회현상은 경제 발전의 촉진제이자 산업구조를 재편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러한 현상은 미래산업인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역량을 결집해 미국을 초월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가능하게 한다.
◇중국인들의 황금만능주의 탄생 역사적 배경
2003년 두 번째 중국에 정착한 필자는 중국을 정확하고 깊이 이해한다는 개인적 목표 아래 중국 인사들과 폭넓고 깊은 관계를 희망했다. 자료와 매체를 통해서 얻을 수 없는 ‘심연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상당한 행운이 작용하여 중국 전역의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할 수 있는 전국구급 인사들과 인맥을 형성할 기회를 얻었다.
군부의 핵심 인맥이 매우 두터운 장관급 인사와는 20년간 23회에 걸쳐 한국의 공식·비공식 방문을 지원하고 동행했다. 이런 인연을 바탕으로 중국 전역의 인사들과 수많은 교류도 이어올 수 있었다. 20년간 지속적으로 교류한 신화통신사 고위 인사와는 식사 자리만 최소 수백 번 이상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그 인사와 교류하던 다양한 인사들과의 모임에도 참석하는 행운을 얻었다. 중국 민영기업 50위 내에 있는 대그룹 회장과는 17년간 개인적 관계 및 수석 투자 고문이라는 직함으로 교류를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유력한 기업가는 물론, 중국 기업의 깊은 속내를 관찰하고 이해하는 귀중한 기회를 얻었다.
각양각색의 중국인들과 잦은 사적인 교류를 통해 중국인 특유의 생활상과 가치관의 배경을 엿볼 수 있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중국이 왜 황금만능주의 사회가 되었는지 추론해 볼 수 있었다. 황금만능주의가 중국의 첨단기술 산업을 도약시키는 동력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인들과 교류해 온 경험을 되돌아보면 종교와 관련한 토론이나 의식에 직접 참여한 경우는 전혀 없었다. 일상적인 대화와 사회 활동 속에서 종교가 화제로 오르지 않는다는 점은, 종교가 중국인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낮다는 정황으로 읽힌다.
처음에는 이러한 현상을 마르크스 유물론을 공식 이념으로 삼은 공산당 정부의 강력한 종교 정책과 통제의 결과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중국 현지인들과의 개인적이고 밀도 있는 교류, 그리고 중국 역사를 통해 그런 해석이 오류임을 깨닫게 되었다.
중국 사회의 종교적 공백은 인본주의를 중심에 둔 유가 전통이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2500년 전 주나라의 공자는 인(仁)과 예(禮)를 통해 인간의 도덕적 수양과 공동체의 조화를 사회 규범의 핵심으로 세웠다. 이후 중국은 서양 세계와 달리, 인간을 우주의 질서 속 주체로 보는 인본주의적 관점을 사회 윤리의 근간으로 축적해 왔다.
중국 춘추시대 유학자인 유교창시자 공자 동상. /바이두 |
물론 당나라 시기 불교는 중국 문학과 예술, 사회 문화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출가를 전제로 한 불교 수행은 가족 중심의 효와 예를 강조하고 가정 윤리를 일체화한 유가적 사회구조와 어긋나는 사상이었다. 이는 불교가 중국의 지배적인 종교로 발전하는데 제약이 되었다. 결국 국가 운영의 통치 이념과 일상의 윤리 규범을 지배한 것은 유학이다.
중국의 유교를 종교로 분류해야 한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그러나 종교 고유의 의식 구조와 초월적 교리까지 고려하면 유교를 종교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유교는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집단의식을 진행하는 절차가 없고, 초월적 신을 중심으로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신앙 공동체의 형성도 없다. 특히 인간의 사후 심판이나 선악의 응보를 약속하는 예언적이고 의례적 장치 또한 부재하다. 따라서 유교는 종교라기보다 인간의 수양과 사회 질서를 규범화한 인본주의 사상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정신적·육체적 고난이 닥친 중국인들의 최고 안식처는
종교의 공백은 급속한 경제성장, 도시화, 그리고 부의 축적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적 가치관과 맞물리며 독특한 문화적 양상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돈은 귀신도 부린다”라는 식의 황금만능주의 정서는 전통적 종교나 초월적 가치가 차지하던 자리를 대체하며 사회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결국 종교의 부재는 단순한 이념적 통제의 결과를 넘어, 중국인들의 물질 중심 가치관과 결합해 황금만능주의적 사회현상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는 개인의 생활에서부터 기업 문화, 사회 정책, 도덕의식에 이르기까지 중국 사회 전반의 행동 양식을 배양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매우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보편적으로 의지하는 최고의 방법은 돈의 힘이다. 서양이나 한국에서는 어려움에 직면하면 종교에서 도움과 위안을 의지하곤 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종교의 공백 탓에 이런 곤란한 상황에서 돈 외에 구원을 구하거나 의지할 곳이 없다. 여기에 공정한 법 집행과 정부의 행동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까지 더해지면, 돈의 중요성은 더 배가된다. 결국 돈만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배금주의를 더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중국에서 ‘공산당 중의 공산당’에 속한다고 할 만한 정부 기관 지인의 사례이다. 베이징 시내 정원이 넓은 고급 빌라에 사는 그 지인은 아주 큰 개를 기르고 있었다. 집을 방문한 나에게 개를 한 대 때리라고 하면서, 자기는 매일 한 번씩 때린다고 했다. 그 개의 이름이 당시 일본 총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였다. 그만큼 일반 중국인보다 더 일본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표현하곤 했다.
그 지인이 새로 차를 구매했다며 시승식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 당연히 당시 중국인의 ‘국민차’인 독일 아우디 승용차를 생각했는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일본 도요타의 대형 승용차를 구매한 것이다. 놀라는 나를 보고 그는 중고차 가격이 일본 승용차가 유리해 구매했다고 태연하게 설명했다. 대한민국 핵심 고위 공무원이 중고차 가격이 높다고 일본 승용차를 살 거라고 상상조차 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중국인의 배금주의를 깊이 이해하는 경험이었다.
중국에서 청년들이 돈을 최고의 목표로 생활하는 가치관의 형성은 어쩌면 당연한 사회현상이다. 이런 가치관은 청년들이 황금만능주의를 숭상하고 추구하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자신의 힘으로 단기간에 신분 상승을 성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인 첨단기술 산업에 신념과 열정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전통 지식산업인 변호사, 의사, 대학교수 등에 신분 상승의 기회로 청년들이 도전하는 한국 사회. 이런 대비가 만들어갈 한국과 중국의 미래는 어떨까.
[[전문가 칼럼] ①중국에 대한 오판이 잉태한 일본의 실기]
[[전문가 칼럼] ②서독의 어부지리⋯거침없는 중국 시장 진격]
[[전문가 칼럼] ③파도를 보지 말고,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라]
[[전문가 칼럼] ④ 역사적 교훈과 구조적 통찰 부재가 불러온 통한의 2패]
[[전문가 칼럼] ⑤ 딥시크 현상⋯예상치 못한 충격인가, 예견된 결과인가?]
[[전문가 칼럼] ⑥ 신분 상승 꿈꾸는 中 청년들의 선택은... 우리와 다른 사회적 지위 ‘공, 지엔, 파, 스’]
[[전문가 칼럼] ⑦ 미래 꿈꾸는 中 청년들, 신분 상승의 동아줄은 어디에 있나]
[편집자 주] 이춘우 호서대 특임교수는 한중 수교가 이뤄진 1992년 삼성 중국 지역 전문가로 대륙을 돌면서 중국과 인연을 맺은 후, CJ(제일제당) 중국사무소 대표를 지냈으며,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에서 근무했고, 현지에서 화장품 유통업체 카라카라를 창업하기도 했다. 2012~2017년에는 중국 50대 민영기업 신화련그룹의 투자수석고문을 역임한 바 있다. 이춘우 특임교수의 칼럼은 3주에 한 번씩 연재될 예정이다.
이춘우 호서대 특임교수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