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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즙필승’을 아시나요···반도체 남방 한계선, 인재가 산단 부지 정한다 [갭 월드]

서울경제 서종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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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갑 기자’의 갭 월드(Gap World) <29>
“울면 평택 안 간다” 선즙필승의 법칙
지역 균형 중요하지만 인재수급 우선
인재 사이선 용인이 근무 마지노선
삼성, 평택 기피에 R&D 북상 압력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지도가 정부의 국토 균형 발전 논리가 아닌 고학력 엔지니어들의 ‘남방 한계선’에 따라 다시 그려지고 있다.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전력 수급을 이유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부지 이전을 시사했다가 뒤늦게 수습하는 헤프닝도 벌어졌다. 산업계는 인재 확보와 배후 생태계 유지를 위해 용인 라인 사수가 생존의 필수 조건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글로벌 빅테크와 속도전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서울 접근성이 보장된 수도권 남부가 물리적 마지노선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이달 19일 삼성전자(005930)와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부지 매입 계약을 체결하고 22일부터 토지 보상 협의에 착수했다. 협의 시작 5일 만인 26일 기준 계약률은 14.4%를 기록하며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있다. 김 장관이 최근 ‘전력 수급 문제로 부지 이전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 발언으로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조성이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는데 기우에 불과했던 것이다.

판교는 두뇌, 기흥은 심장, 용인은 타협점
인력 유출 막을 최후의 방어선 구축해야




반도체 업계가 용인에 대규모 산단을 조성하는 배경에는 이른바 ‘반도체 인력 남방 한계선’이 존재한다. 서울을 기점으로 직무에 따라 이 한계선은 점차 남하하다가 용인에서 멈춘다. 팹리스와 인공지능(AI) 반도체 설계 인력은 서울 강남 접근성이 15분 내외인 ‘판교’를 제1저지선으로 삼는다. 메모리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은 서울 강남까지 40~60분 내외인 기흥과 화성을 현실적 마지노선으로 여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대규모 공장(팹)과 인재 수급이 가능한 최후의 마지노선인 셈이다.

반면 이 선을 벗어난 지역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은 상당하다. 삼성전자 사내에서는 이른바 ‘선즙필승(先汁必勝)’이라는 은어까지 돌 정도다. “먼저 눈물을 흘리면 이긴다”는 뜻으로 인사 발령 시즌에 인사팀을 찾아가 읍소해서라도 평택(서울 강남까지 60분 이상) 등 남방 한계선 아래로의 배치를 피하려는 분위기를 빗댄 말이다. 평택캠퍼스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 기지인데도 출퇴근 교통 체증이 심하고 서울 접근성이 낮아 젊은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기피 근무지 1순위로 꼽힌다.



교통 지옥은 곧 퇴사 사유로 직결
워라밸·교육 문제 민감한 인재들





엔지니어들이 이토록 위치에 민감한 이유는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과 가족에 있다. 삼성전자 노조 설문 등에 따르면 연구직 엔지니어들이 수용 가능한 통근 시간은 편도 1시간 내외다. 평택캠퍼스의 경우 금요일 퇴근 시간대 서울까지 2시간 30분이 소요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무 몰입도 저하는 물론 이직 욕구까지 높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배우자의 직업과 자녀 교육도 문제다. 석·박사급 반도체 전문 인력의 배우자는 확률적으로 서울 혹은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에 근무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 집 마련을 우선으로 삼되 사정에 따라 경기도에 터전을 마련하더라도 자녀 교육을 위해 우수한 학군에 학원가 접근이 용이한 판교와 분당 거주를 선호하는 이유다. 한 팹리스 업체 대표는 “근무지가 판교 아래라고 하는 순간 지원자 수가 급감한다”며 “소프트웨어와 설계 인력은 서울 강남 접근성을 연봉만큼이나 중요한 직장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전했다.




장비 멈추면 골든타임 내 수리 필수
인천공항 1시간 거리 물류망 관건





지리적 입지는 인력뿐만 아니라 제조 경쟁력인 수율과도 직결된다. 24시간 가동되는 팹 특성상 장비가 말썽을 부릴 경우 즉각적인 대응이 필수다. ASML,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 등 글로벌 장비 기업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000660) 팹이 위치한 용인과 동탄 인근에 거점을 구축했다. 팹이 수도권 외곽으로 멀어질 경우 엔지니어 도착 시간이 지연돼 골든타임을 놓칠 위험이 크다는 분석이다.

수출 물류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수도권 입지는 대체 불가능하다. 국내 반도체 수출 물량의 약 96%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처리된다. 무진동 차량으로 항공 운송되는 반도체 특성상 공항까지의 이동 거리가 길어질수록 물류 비용 증가와 납기 지연이 발생한다. 대만 TSMC가 타이베이 인근 신주에 핵심 기반을 두는 것과 달리 인력난과 인프라 부족으로 가동이 지연된 미국 애리조나 공장 사례는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갭 월드(Gap World)’는 서종‘갑 기자’의 시선으로 기술 패권 경쟁 시대, 쏟아지는 뉴스의 틈(Gap)을 파고드는 코너입니다. 최첨단 기술·반도체 이슈의 핵심과 전망, ‘갭 월드’에서 확인하세요.






서종갑 기자 ga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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