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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욱의 시시각각] '용산'은 죄가 없다

중앙일보 서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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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욱 콘텐트국장

서승욱 콘텐트국장

-대통령님, 정운찬 총리를 왜 임명하셨습니까. 박근혜 대표 측에선 후계자 프로젝트로 의심하던데.

"아냐 아냐, 정 (전 서울대) 총장이 충청도 (공주) 사람이잖아. 충청도 사람이 세종시 수정안 제대로 한번 해보라고 임명했어. 세종시를 제대로 만들어 보라고. 다음 선거와는 아무 관계없어."

이명박(MB) 정권 2년 차였던 2009년의 어느 가을밤이었다. 청와대 부근 안가(안전가옥)에 당시 MB와 몇 명의 기자가 마주 앉았다. 필자도 그 자리에 있었다. 정국을 흔드는 핵심 이슈들에 대한 허심탄회한 질문과 답변이 막걸리 몇 순배와 함께 오갔다.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한 현직 대통령과 기자들의 대면, 청와대가 구중궁궐로 인식되던 시절에도 이런 물밑 소통은 있었다. 당시 지인들과의 주말 테니스를 마친 MB가 출입기자들의 공간인 춘추관에 들러 깜짝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테니스복 차림에 목엔 땀수건을 두른 채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의 사진이 여러 장 남아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취임식을 하루 앞뒀던 2022년 5월 9일 용산 대통령실의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취임식을 하루 앞뒀던 2022년 5월 9일 용산 대통령실의 모습. [연합뉴스]


비단 MB뿐이 아니었다. 보수 신문들과 아슬아슬한 갈등 관계를 이어온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도 기자들과의 관저 소통은 있었다. 관저에서 대통령과 식사하고, 담배를 함께 피운 선배들의 취재담이 후배들에게 전해지곤 했다. 소통의 문은 좁지만, 열려 있었다.

서울 종로구 청와대로 1번지. 청와대가 한국 정치의 중심으로 다시 복귀했다. 29일 0시 용산 대통령실에서 내려간 봉황기가 청와대에 게양됐다. '대통령실'은 사라지고, 모든 게 '청와대'로 원위치다. 앞서 밝혔듯 오랜 세월 동안 청와대는 한국 정치 불통의 상징이었다. 대다수의 언론이 이구동성으로 '이전'을 촉구하는 공공의 적이기도 했다. 본관에서 비서동까지의 500m, 비서동에서 기자실(춘추관)까지의 300m는 대통령과 참모, 또 권부와 언론 사이 소통 단절을 상징하는 물리적 장벽으로 인식됐다. 구중심처에 숨어 있는 대통령 관저 또한 '민심과 동떨어진 갈라파고스'라는 청와대의 고립된 이미지를 더 심화시켰다.



정치 중심, 43개월 만에 청와대 복귀

용산의 오명은 세입자의 실정 탓

장소보다 대통령 의지가 더 중요

"현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실과 참모들이 너무 떨어져서 문제가 크다. 너무 권위주의적이다. 참모가 대장 옆에서 왔다 갔다 해야지, 이런 조직이 어디 있나. 용산으로 가겠다는 건 대통령이 수시로 참모들 만나서 일 똑바로 안 하면 국민들 대변해서 조인트 까려고(정강이를 걷어차려고) 하는 것이다." 2022년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결심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변에 했다는 얘기다. 용산 이전 작업에 참여했던 그의 참모는 "윤 대통령이 '청와대를 한번 가 보니 용산 이전 결정 전에 봤다면 (청와대에서) 못 나왔겠다'고 하지 않았나. 청와대가 출퇴근 불편도 없고 보는 눈도 없고, 그 안이 다 보안 구역이잖아. 기자실이 있는 춘추관은 멀리 다른 건물에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완전히 '왕 놀이'를 할 수도 있지. 그런데도 윤 대통령이 용산에 간 데는 분명 불편을 감수한 자기희생적 측면이 있었다"(『실록 윤석열 시대』 중 참모 F씨)고 증언했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다. 다만 실천이 문제였다. 자신이 열어젖힌 용산 시대를 스스로 무너뜨린 건 윤 전 대통령 스스로였다. 비상식적인 인식과 일방적인 언어로 도어스테핑을 중단시켰고, 폭음과 지각 출근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부부가 짝을 이뤄 '왕 놀이'를 일삼았고, 옳은 말 하는 참모를 멀리하다 결국 망상적 계엄으로 용산 시대의 셔터 문을 스스로 끌어내렸다. 용산 땅과 건물에 잘못이 있을 리 없다. 중요한 건 국민, 야당, 언론, 참모와 제대로 소통하겠다는 대통령의 마음가짐과 의지다. 그런데 용산은 그 세입자를 잘못 만난 탓에 굴욕적인 오명을 당분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이재명 대통령의 청와대는 어떤 모습일까. 용산 대통령실의 운명이 윤 전 대통령에게 달려 있었듯, 이제 모든 것이 전적으로 이 대통령의 몫이다.

서승욱 콘텐트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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