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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613] 왕과 城의 아이러니

조선일보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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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슈반슈타인성(城), 건축기간 1869~1886년, 독일 바이에른주 슈방가우 소재.

노이슈반슈타인성(城), 건축기간 1869~1886년, 독일 바이에른주 슈방가우 소재.


‘잠자는 숲속의 공주’부터 ‘겨울왕국’의 엘사까지 수많은 디즈니 공주의 성(城)은 독일 바이에른주의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모태로 만들어졌다. 험난한 알프스 협곡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솟아오른 백색 첨탑은 과연 마법에 걸린 공주를 영원히 숨겨둘 것 같은 환상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이 성은 동화 속 공주를 위해 지어진 게 아니라, 동화 속에 살고 싶던 왕자의 작품이다.

성을 지은 루트비히 2세는 1864년, 열아홉 나이에 바이에른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그러나 독일 지역이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통일되면서 바이에른은 자율성을 잃고 왕의 지위 또한 상징적인 수준으로 축소됐다. 루트비히 2세가 중세 기사의 전설을 주제로 한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과 ‘탄호이저’에 걷잡을 수 없이 매료된 건 필연이었다. 백조가 끄는 배를 타고 나타나 공주를 구하는 신비로운 기사 로엔그린은 자기 정체를 밝혀야 하는 순간에 멀리 떠나야 했다. 죄를 뉘우쳤지만, 오직 죽은 다음에서야 구원을 받은 기사 탄호이저의 절망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속수무책으로 사라져 가는 바이에른 왕국을 위한 애가(哀歌)와도 같았을 것이다.

루트비히 2세는 수도 뮌헨을 벗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슈방가우의 ‘백조의 호수’ 옆에 바그너식 중세 기사의 성을 짓기 시작했다. 노이슈반슈타인은 전쟁을 위한 성벽이 아닌, 전설을 노래하기 위한 극장이었던 것.

디자인을 맡은 사람은 바그너 오페라의 무대 디자이너였고, 건축가의 진짜 역할은 환상적인 디자인을 실현 가능한 도면으로 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루트비히 2세는 여기서 반 년도 채 못 살고 폐위됐다. 근대 국가에서 전설 속 기사의 낭만을 꿈꾸기만 하는 국왕은 죄인이나 다름없었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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