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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뷰] ‘국산 주식 장려 운동’, 번지수가 틀렸다

조선일보 김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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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 대책이 “미국 주식 팔라”
기세 좋은 美 투자는 이성적 판단
정부가 한국 시장 매력 올려주면
합리적 투자자는 알아서 돌아온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4일 해외 주식을 팔고 한국 주식에 장기 투자하면, 해외 주식 양도소득세를 한시적으로 비과세하는 내용을 담은 '국내투자·외환안정 세제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25일 서울 한 증권사 미국 주식 관련 광고. /연합뉴스

기획재정부는 지난 24일 해외 주식을 팔고 한국 주식에 장기 투자하면, 해외 주식 양도소득세를 한시적으로 비과세하는 내용을 담은 '국내투자·외환안정 세제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25일 서울 한 증권사 미국 주식 관련 광고. /연합뉴스


초등학교 시절인 1980년대 등굣길에 선생님은 신발 검사를 했다. ‘국산품 애용’을 강제하던 때다. 외제 운동화 신으면 혼쭐이 났다. 당시 기사를 찾아보니 국산품 사용의 명분은 외채 줄이기였다. 최근 고환율이 지속되자 정부가 개인 투자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줄 테니 ‘외제’ 주식을 팔라고 설득하고 나섰다. 오래전 국산품 애용 운동 생각이 났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미국 주식이 쿨해서 투자한다니 걱정”이라 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주변의 많은 개인 투자자는 이성적으로 판단해 미국 주식을 산다. 투자 경험이 꽤 쌓인 데다 정확한 기업 정보를 접하고 충분히 학습할 길이 열려 있는 덕이다. 미국에 투자하는 이유를 물으면 “사고 싶은 종목이 한국보다 훨씬 많다”고 입을 모은다. 앞날이 기대되는 회사가 미국에 특히 많다는 얘기다.

미국 시가총액 1~10위 명단을 2005년과 비교해 보니 MS 하나 남고 싹 바뀌었다. 10년 전까지 200등에도 못 들던 회사 엔비디아가 AI 열풍을 타고 1등에 등극한 나라가 미국이다. 그야말로 ‘쿨’하다. 반면 한국은 새 ‘스타 기업’이 참 안 나온다. 삼성·SK·현대차 등 대기업 계열사로 이어지는 상위권 종목이 20년 넘도록 대부분 그대로다.

한 경제학과 교수는 “벤처 창업자 중엔 ‘기업 가치를 딱 3000억원까지만 키우고 싶다’는 이가 적지 않다”고 했다. 회사가 너무 크면 피곤해질 일만 남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한국에선 기업 규모가 불어날수록 사업하기가 고단해진다. 한은은 “회사가 ‘중소’에서 ‘중견’ 기업으로 전환되면 126개 규제를 추가로 적용받는 탓에 한국 기업 사이엔 성장을 회피하는 ‘피터팬 증후군’이 만연하다”고 최근 진단했다. 기업 스스로가 성장하길 꺼리는데 그 주식을 살 수는 없다.

미국 기업이 기세 좋게 뻗어갈 때 한국 기업은 수많은 규제를 습득하고 지키느라 힘을 빼야 한다. 선거 때마다 ‘표’ 되는 이권·시민 단체, 노조 눈치 보느라 규제 위에 규제를 더해온 결과다. 말하기도 피곤하지만 승차 공유는 아예 사업이 원천 봉쇄됐다. 미국·중국에선 ‘로보 택시’가 돌아다니는데 정부는 이제야 자율주행을 위한 임시 운행 제한 구역 완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사이 테슬라가 한미 FTA로 규제가 느슨한 ‘미국산’ 자동차를 활용해 고도의 자율 주행 시스템을 한국에 풀어버렸다. 세계 최대 스포츠 앱인 ‘스트라바’는 올해 한국에서 철수하며 “개인 정보 규제 등에 대응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이유를 밝혔다. 주 4.5일 근무제까지 도입하려는 나라에서 테슬라 같은 기업이 나오길 기대한다면 과욕이다.

2015년 말 대비 미국 S&P500 지수(파란 선)와 한국 코스피(초록 선) 상승률. 2025년 12월은 26일 종가 기준.

2015년 말 대비 미국 S&P500 지수(파란 선)와 한국 코스피(초록 선) 상승률. 2025년 12월은 26일 종가 기준.


정부는 ‘서학 개미 귀환책’ 보도자료에 올해 코스피가 72% 올라 미국 상승률을 앞선다고 강조했다. 투자자들은 그러나 1년만 보지 않는다. 지난 10년 S&P500 지수 상승률은 240%, 코스피는 올해 그나마 올라 110%다. 미국 주식 샀다고 손가락질할 이유는 없다. 미국에 투자해 수익이 많이 났다면 국가 전체로는 달러를 번 셈이니 좋은 일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 새 비과세 통장을 출시하며 대상에 미국 주식까지 포함했다. 구호는 “글로벌 성장 동력을 일본 국민 자산 형성으로”였다. 한국 투자자 마음도 비슷하다.


외국 화장품을 좋아하던 소비자들은 값싸고 좋은 한국 제품이 많이 나오자 자연스레 국산을 더 사들이고 있다. 투자자들도 한국 주식이 좋다고 판단하면 알아서 돌아올 것이다. 정부는 환율 잡겠다며 미국 주식 팔라고 호소하기 전에 경제가 더 성장할 판을 깔고 규제로 막힌 기업의 생산성을 올려줄 방법부터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경제 당국자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설마 모르면, 더 문제다.

[김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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