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 연합뉴스] |
미국 실리콘밸리 유망 인공지능(AI) 스타트업들이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AI 붐이 일면서 오픈AI, 앤스로픽 등 선두 기업에 대규모 투자가 몰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AI 거품 붕괴에 대비해 미리 재무적 방어벽을 쌓으라는 투자자들 조언도 자금 조달 확대를 부추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장 자금 확보를 넘어 불확실한 시장 환경 대비를 위한 ‘현금 완충 지대’를 구축하며 요새형 재무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2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시장조사 업체 피치북 데이터를 인용해 2025년 미국 주요 비상장 AI 기업의 자금 조달 규모는 1500억달러(약 215조원)로 종전 최고치였던 2021년의 920억달러를 크게 웃돌았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기록은 소수의 초대형 ‘메가 딜’이 견인했다. 오픈AI는 올해 3월 일본 소프트뱅크가 주도한 410억달러 투자 유치로 대규모 현금을 확보했고, 앤스로픽도 지난 9월 130억달러를 조달했다. 메타가 데이터 라벨링 스타트업 스케일AI에 투자한 140억달러, 일론 머스크의 xAI가 유치한 100억달러까지 합치면 이들 거래만으로도 투자 유치금은 780억달러에 달한다.
AI가 경제 전반을 혁신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성장성이 확인된 상위 스타트업으로 자금이 쏠린 점도 투자액 증가의 배경이다. 코딩 에이전트 기업 애니스피어는 기업 가치가 올해 초 26억달러에서 11월 270억달러로 10배 이상 뛰었고 두 차례 투자로 32억달러를 확보했다.
AI 검색 기업 퍼플렉시티도 올해 두 차례 투자 유치를 통해 8억달러를 조달했으며 기업 가치는 200억달러로 1년 새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오픈AI 출신 인사들이 설립한 싱킹머신스랩과 세이프슈퍼인텔리전스 역시 수조 원대 투자를 유치하며 이 흐름에 합류했다.
여기에 AI 거품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면서 스타트업이 현금을 최대한 비축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벤처캐피털(VC)들이 내다보는 2026년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대형 기술 기업의 AI 인프라스트럭처 지출이 급증하는 반면 수익화 속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금리 변동성,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겹치면서 내년을 기점으로 투자 심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런 환경에서 VC들이 생존을 우선하라고 조언함에 따라 스타트업들이 선제적으로 대규모 자금 확보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라이언 빅스 프랭클린템플턴 벤처 투자 공동책임자는 FT에 “창업자에게 가장 큰 위험은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한 채 투자 환경이 급격히 얼어붙는 것”이라며 “지분 희석을 일부 감수하더라도 사업이 성공한다면 결과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균적으로 스타트업은 2~3년에 한 번씩 투자를 받지만 최근 성과가 뛰어난 AI 기업들은 몇 달 만에 다시 투자 시장을 찾고 있다.
불황 국면에서는 매출 성장보다 현금 보유 기간, 즉 ‘런웨이’가 기업 운명을 좌우한다는 논리가 실리콘밸리에 퍼지고 있다. 현금을 충분히 쌓아둔 기업만이 인력 감축이나 연구개발(R&D) 축소 같은 극단적 선택을 피하며 기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의 대형 투자 유치는 단순한 성장 자금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통과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라는 설명이다.
이처럼 방어적 목적에서 쌓인 현금은 동시에 향후 시장 재편을 위한 공격 수단이 되기도 한다. 투자 열기가 유지되는 동안 현금을 최대한 확보해뒀다가 시장이 흔들릴 때 경쟁사나 유망 기술을 공격적으로 사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현금 여력이 풍부한 상위 기업이 생태계 재편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싱가포르투자청(GIC)에서 기술 투자를 총괄했던 제러미 크랜츠 센티널글로벌 창업자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안전띠를 매야 할 시점”이라며 “공개 시장에 작은 충격만 발생해도 대형 비상장 AI 기업들이 연쇄적인 인수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원호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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