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보다 더 행복해요"... 신유빈이 라켓 내려놓고 꼭 잡은 '낯선 손'

한항공 여자탁구단-장애인 선수단 '아름다운 동행'
WTT 파이널스 우승의 열기, 이웃 향한 온기로 이어져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는 신유빈의 행보

장애인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고 있는 신유빈.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지난 12월 29일 오후, 인천 서구에 위치한 대한항공 탁구단 훈련장. 밖은 연말의 차가운 바람이 불었지만, 체육관 안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와 훈훈한 공기로 가득 찼다.

세계 무대를 호령하는 '삐약이' 신유빈(대한항공)이 다시 라켓을 잡았다. 하지만 네트 너머의 상대는 세계 랭커가 아니었다. 그녀와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하지만 조금은 다른 움직임을 가진 '동료'들이었다.

대한항공 여자 탁구단이 연말을 맞아 같은 회사 소속 장애인 탁구 선수들과 특별한 합동 훈련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주세혁 감독을 필두로 신유빈, 이은혜 등 여자탁구단 주축 선수들과 장애인 선수 및 보호자 등 50여 명이 모여 작은 축제를 벌였다.

'함께 날고, 함께 성장하자'. 이날 훈련장 벽면에 걸린 슬로건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다. 이달 중순 'WTT 파이널스 홍콩 2025'에서 임종훈과 짝을 이뤄 혼합복식 정상에 오르며 세계를 놀라게 했던 신유빈이다.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그녀였지만, 이날만큼은 승부사가 아닌 다정한 '멘토'이자 '친구'가 되었다.

선수들은 장애인 선수들과 짝을 이뤄 몸을 풀고, 랠리를 이어가며 구슬땀을 흘렸다. 휠체어와 스탠딩의 경계는 탁구공이 오가는 랠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허물어졌다. 정교한 스윙 교정과 따뜻한 격려가 오가는 동안, 훈련장에는 웃음꽃이 끊이지 않았다.

훈련에 참여한 이겨라 선수는 "탁구를 통해 꿈과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은 비장애인이나 장애인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라며 "탁구 선수로서 깊은 동질감을 느낀 소중한 시간이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훈련이 끝난 뒤 이어진 다과 시간, 신유빈의 표정은 코트 위에서보다 훨씬 밝았다. 그녀는 단순히 재능을 기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더 큰 선물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신유빈 선수(2열 왼쪽 두번째)를 비롯한 대한항공 여자탁구단 선수들과 장애인 탁구선수들이 29일 오후 인천 서구 대한항공 탁구단 훈련장에서 합동 훈련 및 교류 행사를 진행한 뒤 기념 사진을 촬영한 모습.뉴시스

신유빈은 "연말에 이런 따뜻한 행사들 덕분에 에너지를 많이 받는다"라며 활짝 웃었다. 이어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해진다. 이런 순간들이 내가 탁구를 더 잘해야 하는,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원동력이 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실력만큼이나 성숙한 그녀의 내면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1973년 창단해 국내 최장수 탁구팀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항공은 그동안 스포츠를 통한 사회적 책임(ESG)에 앞장서 왔다. 사내에 스포츠 직능을 신설해 장애인 선수를 직접 채용하고, 그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세계에서 사랑받는 항공사로서 앞으로도 스포츠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장애·비장애의 벽을 허무는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차가운 승부의 세계를 잠시 떠나, '함께'의 가치를 증명한 신유빈과 대한항공 탁구단. 그들이 보여준 겨울날의 땀방울은 그 어떤 금메달보다 더 밝고 따뜻하게 빛났다.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는 '국민 여동생'의 행보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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