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월20일 국회에서 허위조작정보 근절안 발표에 앞서 노종면 언론개혁특별위원회 간사와 이야기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윤석열 정권 치하는 언론인들에게 ‘입틀막’의 시대였다. 명예훼손 고소·고발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편파·정치 심의’가 비판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도구로 십분 활용됐다. 형사처벌 위협이야 이전에도 있었던 일이지만, 방심위의 입틀막 심의는 좀 유별났다. 언필칭 ‘민간 독립기구’인 방심위가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정권의 언론 탄압 주구 노릇을 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입틀막의 압권은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 보도에 대한 심의였다. 뉴스타파는 대선 직전인 2022년 3월 윤석열 후보가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 불법대출 사건 수사를 무마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언론으로서는 응당 할 수 있는 검증 보도였음에도 윤석열 정권은 이성을 잃은 듯 폭주했다. 대통령실이 뉴스타파 보도를 “희대의 정치공작”으로 규정하자 방심위는 “조직의 명운을 걸고” 심의에 나섰다.
류희림이 이끌던 방심위는 “허위 보도” 제재를 위해 통신심의 카드를 빼들었다. 음란물 등 온라인상의 불법 정보에만 적용하던 통신심의를 인터넷언론사의 보도물에도 확대 적용하는 무리수를 감행한 것이다. 그러나 방심위 통신심의의 근거 법률인 정보통신망법에는 언론 보도를 온라인 유통이 금지되는 ‘불법 정보’로 의율하는 규정이 어디에도 없었다. 언론사의 모든 보도물은 언론중재법의 규제를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다.
‘엄중 조치’를 호언했던 방심위는 결국 기사 삭제 등 시정 요구는 하지 못하고 서울시에 신문법 위반 여부에 대한 검토를 요청하는 선에서 심의를 종결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사들에 역대급 법정 제재를 쏟아내 ‘국가 검열기구’라는 비판을 샀던 방심위이지만, 명확한 법적 근거도 없이 언론 보도에 통신심의 잣대를 들이대 제재하기는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당시 방심위가 ‘허위 보도’라는 이유로 사상 초유의 통신심의에 나서자 언론계와 시민사회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언론 재갈 물리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언론자유대책특별위원회는 2023년 10월 내놓은 성명에서 이렇게 질타했다.
“방심위의 뉴스타파 보도 심의는 월권이자 법적 근거도 없는 ‘위법 행정’이다. (중략) 권한남용과 위법도 서슴지 않으며 윤석열 정권의 언론 장악 시도에 편승하고 있는 방심위의 위법 행정에 대해서 분명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뒷간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했던가. 윤석열 정권의 입틀막 심의를 목청껏 비판했던 민주당은 집권당이 되기가 무섭게 ‘태세 전환’에 나섰다. 최근 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온라인 유통이 금지되는 정보의 유형을 규정한 44조의7에 ‘허위조작정보’(공공의 이익 등을 침해하는 허위정보 또는 조작정보)를 추가했다. 44조의7은 방심위가 통신심의의 법적 근거로 삼는 조항이다. 시민단체들이 ‘류희림표 가짜뉴스 심의’를 합법화할 길을 열어줬다고 우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당은 44조의7에 규정된 ‘유통 금지 정보’ 가운데 ‘불법 정보’에 대해서만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방미심위, 옛 방심위)가 심의할 수 있을 뿐, ‘허위조작정보’는 방미심위의 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방미심위의 직무는 정보통신망법이 아니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 설치법에 규정돼 있다. 방미통위 설치법 22조는 ‘정보통신망법 44조의7에 따른 사항의 심의’를 방미심위 직무로 규정한다. 불법 정보뿐만 아니라 44조의7에 규정된 ‘유통 금지 정보’ 모두를 심의 대상으로 못박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개정 정보통신망법이 ‘손해를 가할 의도’,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 등의 요건을 두긴 했지만, 그 개념 자체가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자의적 해석으로 정치권력이 불편해할 만한 보도에 ‘허위조작정보’ 딱지를 붙여 유통을 금지할 우려가 크다는 시민단체의 지적은 타당하다. 더욱이 방미심위는 태생적으로 정부·여당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여야 6 대 3)여서 ‘편파 심의’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의 방미심위는 ‘류희림 방심위’와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제도를 만들 때는 늘 악용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만일 ‘제2의 윤석열’이 집권하게 된다면 민주당이 밀어붙인 정보통신망법이 비판 언론 입틀막 도구로 유용하게 쓰일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지금은 아니라고 하지만, 향후 정권에 불리한 여론이 비등할 경우 현 정부도 ‘입틀막 심의’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 것이다. ‘허위조작정보 유통 금지’라는 법적 근거도 마련해 뒀으니 걸림돌도 없다. 악용 가능성이 큰 제도는 아예 싹을 자르는 게 옳다. 민주당이 추가적인 법률 정비에 나서 입틀막 심의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바란다.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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