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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안 와서 먹었는데”… 부모님 위협하는 ‘오래가는 수면제’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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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조디아제핀 처방, OECD 2배
약 기운을 뇌가 정상 상태로 인식
시작은 쉽지만 끊기 어려워 문제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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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수록 복용하는 약이 점점 많아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불면이나 불안, 긴장 완화를 위해 처방되는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는 많은 어르신이 한번쯤 경험해본 약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사용량이 특별히 많지는 않으나, 분명한 특징이 있다. 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약 사용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2배 이상 높다는 점이다. 효과가 오래가는 게 편해보일 수 있지만, 대사 능력이 떨어지는 노년기에는 약 성분이 몸에 축적돼 졸림, 어지럼증, 균형 장애를 유발하기 쉽다. 여기에서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는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을 뜻한다. 많은 어르신이 복용하는 바로 그 약들이다.

노년기에는 잠이 쉽게 깨고, 이유 없이 불안해지며, 몸 여기저기가 불편한 경우가 흔하다. 우울감이나 긴장이 겹치면 일상생활이 더욱 힘들어진다. 문제는 짧은 진료 시간 내에 이런 복합적인 증상을 모두 파악하고 상담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이때 수면제나 신경안정제는 환자에게 ‘오늘 밤 당장 편안함’을 선물하는 빠르고 쉬운 선택지가 된다. 약을 먹고 바로 자거나 마음이 가라앉는 경험을 하면, 환자는 약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된다. 이렇게 약은 어느새 일상이 된다.

다약제복용 클리닉에서 환자들을 만나보면 벤조디아제핀은 가장 줄이기 어려운 약이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확인하게 된다. 그 이유는 '의존성' 한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환자들은 '의사가 준 약이니 괜찮을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졸림이나 몽롱함, 기력 저하, 어지럼 같은 증상을 부작용으로 인식하기보다 노화나 기저질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외래 노인 환자들 상당수는 장기간 벤조디아제핀을 복용하면서도 "큰 부작용은 없었다"고 표현했다.

의료진 입장에서도 부담은 적지 않다. 벤조디아제핀을 줄이면 수면 악화, 불안 증가 증상이 비교적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환자는 "약을 줄인 뒤 더 힘들어졌다"고 느끼고, 의료진 역시 치료 관계가 흔들릴 것을 걱정하게 된다. 그 결과 "지금은 유지하자"는 판단이 반복되면서 약을 계속 처방하게 된다.

약을 끊기 어려운 진짜 이유는 약효가 좋아서가 아니라, 뇌가 약물에 적응해 버렸기 때문이다. 약 기운으로 유지되는 수면과 진정 상태를 뇌가 ‘정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약을 줄이면 원래 증상뿐 아니라 금단에 가까운 불편감이 겹쳐 나타나면서 환자는 더 큰 불안을 느낀다. 여기에 장시간 지속형 약물의 특성이 더해져 다음 날까지 졸림과 인지 저하, 보행 불안정이 남을 수 있다. 낙상, 섬망, 기억력 저하 같은, 노인에게 치명적인 부작용 위험이 커진다.


수면제, 신경안정제는 노인에게 특히 주의가 필요한 약물로 분류된다. 쉽게 시작해서는 안 되는 약이고, 약을 시작할 때부터 언제 어떻게 줄일지 계획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최소 용량으로, 짧은 기간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면 문제나 불안은 생활 리듬, 낮 활동량, 마음 건강을 함께 살펴보는 접근이 필요하다. 약을 줄이는 과정에서 불편함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설명하고, 천천히 조절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년 건강을 지키는 힘은 더 강한 약이 아니라, 약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끊을 시기’를 함께 고민하는 신중함에서 나온다.

백지연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서울아산병원 제공

백지연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서울아산병원 제공


백지연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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