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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9월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는 초유의 국가전산망 마비로 이어졌다. 이후 업계에선 리튬이온배터리의 고질적 폭발 위험을 뒤늦게 지적하는 문제제기가 쏟아졌다. 인공지능(AI) 산업의 핵심인 데이터센터 중요성이 전례 없이 커진 시점이기도 했다. ‘불이 날 수 없는 배터리’를 개발해온 김부기 스탠다드에너지 대표는 “화재 이후 어떻게 하면 데이터센터에 불이 나지 않게 할 수 있느냐”는 문의를 수 없이 받고 있다고 했다.
2013년 카이스트와 미국 MIT 박사들이 모여 설립한 스탠다드에너지는 ‘바나듐 이온 배터리’를 개발했다. 휘발성 전해액대신 물을 사용해 불이 붙을래야 붙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김 대표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리튬이온배터리의 휘발성 전해액을 바꾸지 않으면 화재는 계속 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며 “전해액으로 물을 사용해 아예 불이 날 수가 없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저장에 가장 특화된 원소인 바나듐과 발화 위험이 전혀 없는 수계 전해액으로 만든 바나듐 배터리로 실제 제품 인증을 받고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운용하고 있는 기업은 스탠다드에너지가 유일하다. 화재 위험을 제거한 덕분에 기존 리튬이온배터리가 들어가지 못했던 지하철 역사나 도심의 인구 밀집지역 ESS에 바나듐 이온 배터리가 탑재됐다.
김부기 스탠다드에너지 대표. 스탠다드에너지 제공 |
대전교통공사가 올 7월 대전 구암역에 스탠다드에너지의 ESS를 설치했다. 지하철은 유동인구가 많아 화재시 피해가 매우 클 수 있다.
“도심에서는 전기를 많이 쓰는 곳이 지하철인데, 지하철은 유동인구가 많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불안 요소가 있다면 들어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바나듐 이온 배터리의 안전성을 인정받아 지하철역에도 우리 제품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연구소나 상가들이 입점해 있는 롯데건설과 현대건설 지하에도 우리 ESS가 설치돼 있다. 안전성을 검증받았다는 의미다.
고객사들은 공통적으로 ‘안전에 대해선 더 이상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된다’고 피드백을 주고 있다. 화재가 발생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설치 유지 보수가 쉽다는 점도 강점이다. 대전 국정자원 화재에서 작업자의 실수가 있었다고 하는데, 작업자가 실수를 했다고 불이 나는 것이라면 그만큼 유지 보수가 어렵다는 것 아니겠느냐.”
고성능 ESS는 AI 시대의 필수 인프라로 꼽힌다.
“인공지능(AI)과 같이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어마어마한 전력 사용 변동성을 가진 존재가 나타난다면, 그에 특화된 고성능 ESS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주효했다.”
화재 위험에서 자유롭다 보니 AI 데이터센터나 도심형 ESS, 초급속 충전소 등에서 경쟁 우위가 있다고 평가된다 . 빅테크에서도 협업 제안이 왔나?
“미국 빅테크, 국내 대기업, 국내 대학병원, 일본 기업 등과 협업을 진행 중이거나 추진 중이다. 그동안 리튬이온배터리는 폭발 위험 등 기존 한계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던 시장 위주로 접근하고 있다. 자산가치가 높은 데이터센터나 이동·상주인구가 많은 도심형 ESS 등을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 특히 리튬이온배터리를 가장 먼저 상용화한 일본에서 추진 속도가 빠르다. 최근엔 일본 교토의 전기택시 고속충전소에 필요한 전력을 우리 ESS로 공급하게 됐다.”
AI 3대 강국을 위해 글로벌 톱 수준의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가 강점이 있는 AI 전력 인프라 시장을 선점하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 그것이 진정한 ‘소버린AI’라는 전문가 의견들도 다수다. 효성중공업이나 한국전력, LS 등의 경쟁력과 시너지를 낼 수 있어 보인다.
“배터리를 단순히 배터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AI 시대에 배터리는 전력 인프라다. 과거 우리나라에선 GPU 10개를 돌리다가 정전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미국에선 이미 빅테크들이 AI용 전력 인프라를 표준화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기존 전력망으로는 AI 데이터센터를 돌릴 수 없다는 게 그들의 결론이다. 우리나라도 서둘러 데이터센터 등에서 대규모 실증 프로젝트를 만들어 AI 시대에 맞는 전력 표준을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이대로 내줘선 안된다. ”
스탠다드에너지의 바나듐 이온 배터리 셀 사진. 스탠다드에너지 제공 |
AI 데이터센터를 위한 소형모듈원전(SMR) 관련 협업도 검토하나
“SMR에 우리 배터리를 붙이자는 얘기들도 하고 있다. 지금은 산업표준이 대격변하는 시기다. 이 물결에 제대로 올라타느냐 아니냐가 기업과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다고 본다. 정부가 전력 인프라 표준 모델을 만들고 수출까지 해야 한다. 한국전력이 쌓아온 엄청난 전력망 데이터를 학습해 ESS 운영체계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다면, 전력 인프라 표준 글로벌 경쟁에서 압도적으로 앞설 수 있다고 본다.”
AI반도체 기업인 리벨리온과 손잡고 데이터센터 전력을 효율적으로 제어하는 AI 개발에 돌입했다. AI는 AI 데이터센터 내 서버와 ESS 간 전력 공급 현황을 확인하고 전력 부하를 자동으로 관리할 용도로 만들어진다.
“저희와 같은 고성능 ESS는 두뇌가 똑똑해야 한다. 언제 배터리를 충전하고 방전해 수익성을 극대화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건물마다 전력 사용 패턴이 다 다르기 때문에 전력 사용 조건과 비용 등을 최적화하는 것이 필수다.”
내년부터 본격적 대량 생산에 들어간다고
“대전 생산라인이 내년 초부터 가동된다. 한 해 동안 라인 1개당 최대 1700만 개의 배터리 셀을 양산할 계획이다. 생산하는 만큼 팔릴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의 수요가 우리 생산 능력을 뛰어넘는 상황이어서, 고객사들의 요청에 따라 생산 규모를 빨리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스탠다드에너지가 대전도시철도 1호선 구암역에 설치한 바나듐 이온 배터리 에너지 저장장치(ESS) 내부 배터리 랙. 스탠다드에너지 제공 |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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