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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중국의 산업 혁신, 기술보험의 비밀

머니투데이 김헌수순천향대학교 IT금융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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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실수'라는 표현은 한때 중국산 제품을 가볍게 여길 때 쓰이던 말이었지만, 오늘날 중국 기술의 발전 속도를 보면 이미 오래전 효력을 잃었다. 중국은 저가 공산품의 이미지를 탈피하여 이제 AI, 배터리, 전기차, 반도체 장비 등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며 '대륙의 기술'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중국 정부가 수십 년간 일관되게 추진해 온 전략적 경제·산업정책의 결실이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 30년간 평균 9%에 달하는 실질 GDP 성장률을 기록하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산업화를 이룬 국가 중 하나로 부상했다. 개혁·개방 초기에는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시장 경제 요소를 도입하고,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이라는 실용주의 아래 생산성과 투자에 집중했다. 이후 시진핑 시대에 들어서는 단순한 양적 성장을 넘어 산업의 질적 고도화와 기술 자립에 방점을 두며, '중국 제조 2025'을 통해 대규모 구조 전환을 본격화했다.

이 전략적 전환은 금융 시스템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2023년 중앙 금융 업무 회의에서 발표된 금융의 5대 목표는 중국 경제의 미래 방향을 명료하게 정리한 것이다. 다섯 가지 목표인 기술 금융, 녹색 금융, 포용 금융, 양로 금융, 디지털 금융 중에서도 가장 주목해야 할 목표는 기술 금융이다. 왜냐하면 경제의 질적 성장은 결국 기술 혁신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중국 첨단산업의 성장을 견인할 기술 금융의 핵심 도구가 바로 기술보험이다. 중국인민재산보험(PICC)을 비롯한 주요 보험사들은 '연구·개발( R&D)비용 손실보상보험' 등 연구·개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보전하는 기술보험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성공 확률은 낮고 실패 비용은 큰 첨단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기술보험은 기업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연구·개발에 과감히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다. 이는 중국이 단기간에 기술 격차를 좁힐 수 있었던 중요한 동력이며 핵심 산업 정책 중 하나다.

한국은 현재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잠재성장률 하락, 제조업 경쟁력 약화, 금융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기술 중심의 미래산업으로 전환이 시급하지만, 금융은 가계대출과 부동산에 집중되어 고위험 연구·개발에 대한 지원은 매우 제한적이다. 현 정부가 발표한 '생산적 금융 대전환'의 방향성은 타당하지만, 연구·개발 실패 리스크를 분담할 장치가 부재하다는 점이 남아 있다.

아인슈타인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단언했다. 오늘날 기술혁신 현장은 이 말이 현실로 구현되는 공간이며, 연구·개발과 첨단기술 상업화는 필연적인 실패와 막대한 비용을 동반하는 '새로운 시도'다. 중국의 기술보험은 국가가 제도를 설계하고 민간 보험사가 상품화함으로써, 기업에 '실패할 권리'와 '도전할 용기'를 부여하려는 강한 정책적 의지를 보여준다.


이제 우리나라도 중국을 과거의 저가 생산국이 아닌, 전략적 기술 선도국으로 바라봐야 한다. 미래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기술금융 강화뿐 아니라, 기술혁신의 실패 비용을 분담하는 한국형 기술보험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생산적 금융 대전환'이 실질적인 혁신정책으로 완성되기 위한 마지막 조각이다.

김헌수 순천향대학교 IT금융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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