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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너머] 연말 올림픽대로 된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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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의 정치경제부 기자

유진의 정치경제부 기자

연말이 다가오자 올림픽대로를 비롯한 강변북로 서울 도심 길은 꽉 막혀 있다. 내비게이션은 30분 거리라는데 속도계는 좀처럼 오르지 않고 1시간 이상을 운전대를 잡고 있다. 비상등이 켜지고 끼어드는 차를 향해 경적이 연달아 터진다. 직진 차로의 차들은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다. 모두가 급하다. 갈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국회 풍경이 꼭 그렇다. 필리버스터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브레이크다. 다수결이 질주할 때 잠시 멈춰 세워 숙의를 강제하는 장치다. 그러나 연말 국회에서 이 브레이크는 ‘시끄러운 경적’ 취급을 받았다. 다수당은 “국회가 마비됐다”고 진단했고 처방으로 필리버스터를 제한하는 국회법 개정을 택했다. 시끄러우니 끄자는 것이다. 경적만 꺼지면 길이 뚫릴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모양이다.

이 선택이 나온 흐름은 분명하다. 최근 필리버스터는 정책 설득보다 일정 지연의 수단으로 쓰였다. 본회의는 자주 멈췄고 여론은 피로해졌다. 다수당은 이를 ‘비효율’로 규정했다. 본회의에 일정 인원이 상주하지 않으면 토론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한 개정안은 그렇게 등장했다.

하지만 이 설명에는 빠진 대목이 있다. 이미 현행 제도에서도 다수당은 24시간이 지나면 필리버스터를 종결시키고 표결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도 추가 제한에 나선 이유는 필리버스터의 진짜 효과가 토론 내용이 아니라 ‘멈춰 선 장면’에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가 서 있고 책임이 드러나는 그 시간을 지우고 싶었던 것이다.

대가는 절대 가볍지 않을 것이다. 첫째 본회의의 권력 구조가 달라진다. 토론의 질이 아니라 동원력과 체력의 싸움이 된다. 둘째 반대는 말에서 행동으로 이동한다. 지루하지만 기록으로 남던 반대는 고성, 퇴장, 보이콧으로 분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본회의는 더 조용해질 수 있지만 더 자주 깨질 것이다.

셋째 경제입법이 가장 먼저 희생된다. 다수당은 ‘일단 처리’로 기울고 소수당은 ‘전면 저지’로 돌아선다. 그 사이에서 합의형 법안은 설 자리를 잃는다. 국회가 타협의 시장이 아니라 힘의 통로가 되면 중간 지대부터 무너진다. 넷째 오늘의 다수는 내일의 소수다. 소수의 안전판을 약화하는 규칙은 언젠가 부메랑이 된다. 룰이 정치의 전리품이 되는 순간 국회는 선거 때마다 규칙을 흔드는 유혹에 빠진다.


강변북로에서 경적을 끄면 잠깐은 조용해진다. 그러나 병목이 그대로면 도착은 더 늦어진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침묵은 합의가 아니다. 다수결이 만들어낸 정적일 뿐이다. 시끄러움을 줄였다고 길이 열리지는 않는다. 병목을 풀지 않으면 다음 정체는 지금보다 더 거칠게 찾아올 것이다.

[이투데이/유진의 기자 (jinny0536@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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