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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징계로 공식전 못 뛰어" '日 최초 레알 마드리드 선수'가 이제야 털어놓는 아픔…韓 이승우·백승호처럼 '꿈의 클럽' 떠나 홀로서기 중

스포츠조선 윤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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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나카이 다쿠히로 인스타그램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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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일본 축구 역사상 최초의 레알 마드리드 선수라는 타이틀을 지닌 '피피' 나카이 다쿠히로(22·레가네스)가 레알 유스 시절을 떠올렸다.

나카이는 28일(현지시각) 스페인 일간 '마르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최초의 일본인 선수로 마드리드에서 성장한 경험, 1군 슈퍼스타들과 어울려 훈련한 추억, 왜 레알을 떠났는지 등에 대해 가감없이 털어놨다.

2014년, 9세의 나이로 레알 유스팀에 입단한 나카이는 살벌한 경쟁을 뚫고 2022년 레알 B팀인 카스티야에 합류했다. 레알 1군에서 슈퍼스타들과 함께 훈련하며 일본 내에선 스타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끝내 레알 1군 데뷔전을 치르지 못하고 지난 8월 레알을 떠나 레가네스에 새 둥지를 틀었다.

나카이는 처음 레알과 인연을 맺은 순간에 대해 "일본에서 열린 레알 재단 클리닉에 400명 정도의 아이들이 참가했다. 거기서 MVP를 수상한 선수에게 레알 U-12 B팀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을 기회가 주어졌다. 난 그중 한 명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레알과 계약할 확률이 0.01%밖에 안 된다는 말을 들었지만, 레알에 가보는 게 경험상 좋겠다고 판단하셨다. 내가 긴장할 까봐 스페인에 갈 때는 입단 테스트라는 사실을 숨기셨다"라고 돌아봤다.

이어 "아버지가 나를 공항에 데려다줄 때 내 뒷모습에서 레알과 계약을 할 것 같은 '아우라'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지어낸 이야기같기도 하다"라며 웃었다. 세계적인 유망주 사이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나카이는 레알 유스팀과 계약하기에 이르렀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레알 라이프가 시작됐다.

출처=나카이 다쿠히로 인스타그램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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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이는 "처음 도착해서 문화, 언어, 사람들까지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지금은 함께하지 않지만, 당시 나를 도와준 에이전트는 '밖에선 일본인처럼 행동해도 되지만, 경기장 안에선 좀 까칠해져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그런 말이 적응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라고 했다.


초등학생의 나이에 타지에서 생활하는 것에 힘든 점은 없었을까. 그는 '가족이 있는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나'라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 레알을 떠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레알은 스스로 떠날 수 있는 클럽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구단에서 내보내거나, 떠나자고 제안을 해야 떠날 수 있다. 레알은 세계 최고의 클럽이고, 레알에서 뛰는 건 수많은 아이들이 꿈꾸는 특권이다. 매일 아버지와 영상 통화를 했고 아버지를 보고 싶었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이 컸기 때문에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을 만큼 슬프진 않았다"라고 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카이는 "처음에 와서 경기 수준에 깜짝 놀랐다. 완전히 다른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선 드리블로 모든 선수를 제치고, 동료에게 패스도 거의 안 했다. 그런데 여기 오니까 원 터치, 투 터치, 쓰리 터치로 패스를 많이 하고, 점유율을 높어야 한다고 하더라. 일본에선 스페인처럼 점유율 위주의 축구를 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출처=나카이 다쿠히로 인스타그램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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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매일이 시험같았다. 매년 잔류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훈련마다 최선을 다하고, 경기에서 이기고,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했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것 자체가 특권이었다. 나는 발데베바스(레알 훈련장)를 디즈니랜드라고 말하곤 했다. 레알보다 더 좋은 클럽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레알부심'으로 인내하고 견뎠다고 말했다.


레알 시절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선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징계를 받았을 때다. 외국인 선수이자 비유럽연합 선수라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다음 날 중요한 유소년 토너먼트가 열렸고, 명단에도 포함됐지만, 전날 밤 FIFA 징계를 받아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15세까지 그런 상황을 여러번 겪었다. 갑자기 경기에 뛸 수 없을 뿐더러 훈련조차 할 수 없게 됐다. 혼자 훈련은 했지만, 경기는 뛸 수 없었다"라고 털어놨다. 바르셀로나 유스 듀오 이승우(전북) 백승호(버밍엄시티)가 겪었던 일과 흡사하다.

미드필더 나카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1군 훈련에 합류해 카림 벤제마, 루카 모드리치, 토니 크로스, 마르셀로 등 슈퍼스타들과 어울려 훈련을 했다. '패스 마스터' 크로스로부터 '공을 잡기 전 다음 상황을 생각하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했다. 1군 데뷔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했지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유럽챔피언스리그 15회 우승한 레알 1군에서 아시아 출신 유스 선수가 뛰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으로 여겨졌다. 라울 곤살레스 전 감독이 이끌던 카스티야(B팀)에선 자리를 잡지 못하고 주로 교체로 뛰거나 벤치를 달궜다.



레알을 떠날 때가 임박했다는 신호였다. 라요 마자다혼다, 아모레비에타, 라요 칸타브리아 등 하부리그 팀으로 임대를 다녀온 나카이는 지난 여름 레알과 완전히 작별했다. 그는 "카스티야에서 뛰지 못하면 1군에 합류하기란 정말 어렵다. 서두르진 않았지만,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며 "자신감을 잃었냐고? 아니다. 하지만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건 깨달았다. 레알을 떠난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더 프로답게 행동해야 실력이 향상될 거라고 믿고 있다"라고 했다.


나카이는 이적 후 무릎 반월상 연골 파열상으로 장기 결장 중이다. 일본 연령별 대표팀에서도 3년째 부름을 받지 못했다. 레알, 바르셀로나 유스를 거쳐 현재 일본 축구를 대표하는 플레이메이커로 자리매김한 '선배' 구보 다케후사(레알 소시에다드)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는 "나는 처음 레알 유스에 입단할 때의 어린 나카이의 마음을 아직 지녔다고 믿는다. 내 열정은 변하지 않았다"며 "당분간은 (부상으로)뛰지 못하지만, 내년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해 기대가 크다"라고 했다.

앞으론 유럽챔피언스리그, 일본 국가대표팀에서 뛰고, 마흔살 쯤 은퇴한 후에는 유소년 선수들의 기량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고 꿈을 이야기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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