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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까지 해킹되는 시대, '신경권'이 필요하다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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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I 기술은 사람의 뇌와 컴퓨터나 다른 전자기기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로 사람 생각이나 의도만으로 컴퓨터를 조작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쉽게 말해 BCI 칩이 마음을 읽어 그 정보를 컴퓨터에 전달하는 것이다. 뉴럴링크 제공

BCI 기술은 사람의 뇌와 컴퓨터나 다른 전자기기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로 사람 생각이나 의도만으로 컴퓨터를 조작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쉽게 말해 BCI 칩이 마음을 읽어 그 정보를 컴퓨터에 전달하는 것이다. 뉴럴링크 제공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뒷목에 플러그를 꽂고 단숨에 쿵푸를 익힌다. 다시 봐도 멋진 장면이다. 그런데 그 플러그가 반대로 작동한다면 어떨까. 누군가 내 기억, 내 욕망, 심지어 마음속 깊은 비밀번호까지 빼내 간다면…

더 이상 영화 속 상상이 아니다. 2024년,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는 인간의 뇌에 칩을 심는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전신마비 환자가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오직 생각만으로 컴퓨터 커서를 움직여 체스를 두었다. 바야흐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혁명의 시작이다.

이 기술은 루게릭병이나 척수 손상 환자들에게는 한 줄기 빛과 같다. 온몸이 굳어 생각은 명료한데 말이 나오지 않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존 안구 추적 장비로는 1분에 겨우 한 단어를 전할 뿐이지만, 뇌파 연결은 우리가 대화하듯 1분에 150단어 이상의 속도로 소통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BCI는 그들에게 잃어버린 목소리를 되돌려줄 유일한 희망이다.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문제는 '데이터'다. 이 장치가 작동하려면 뇌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생체 신호를 수집하고 해석해야 한다. 내가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뇌가 어떤 패턴으로 반응하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묻는다. 구글과 메타가 우리의 검색 기록을 수집하는 것과 뇌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무엇이 다르냐고. 빅테크 기업들이 고객 정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여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 뇌 데이터 기업이라고 다를까.

영화 '토탈 리콜'에서는 기억을 사고팔거나 가짜 기억을 주입한다.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과학계에서는 이미 뇌 자극을 통해 '움직이고 싶은 욕구'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실험에 성공한 바 있다. 기술이 더욱 정교해지면 특정 의도를 심거나, 욕망 자체를 조작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더 섬뜩한 시나리오는 '브레인 해킹'이다. 연구에 따르면 뇌파의 미세한 변화를 통해 마음속으로 떠올린 비밀번호나 핀(PIN) 번호를 유추할 수 있다. BCI는 본질적으로 뇌와 기계가 연결된 통신 시스템이다. 해커들에게는 새로운 먹잇감인 셈이다. 신용카드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넘어, 나의 생각과 의식이 해킹당하는 것이다.


세계는 이미 법적 논의를 시작했다. 칠레는 세계 최초로 '신경권(Neuro-rights)'을 헌법에 명시했고, 미국 콜로라도주 등에서도 뇌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됐다. 위치정보나 금융정보를 민감정보로 보호하듯, 내 정신건강과 두려움, 욕망이 담긴 뇌 데이터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영화 '매트릭스'가 주는 진짜 공포는 기계의 지배가 아니었다. 내가 보고 느끼는 현실이 정말 '나의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불안, 바로 그것이었다.

뇌와 컴퓨터가 연결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영화 속 빨간 약도 파란 약도 아니다. '내 생각은 온전히 내 것'이라는 확신, 그리고 그것을 지켜줄 제도적 장치다.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지 않도록, 이제는 '신경권'을 이야기해야 할 때다.


김석재 삼성스마트김석재신경과 대표원장·'조종당하는 인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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