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동아일보 언론사 이미지

[천광암 칼럼]‘내란’과 김건희 비리… 흑역사로 막 내린 ‘용산파천’

동아일보 천광암 논설주간
원문보기
무모함과 졸속으로 얼룩진 용산 이전

자폭계엄-김건희비리 ‘나비효과’까지

부작용-혼란 ‘파천(播遷)’에 견줄 수준

모든 의혹 사실 밝혀 史草로 남겨야
천광암 논설주간

천광암 논설주간

29일 0시 청와대에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기가 다시 걸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단 하루도 들어가지 않겠다”며 취임과 함께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긴 지 3년 7개월 만이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윤 전 대통령이 2개월에 불과한 짧은 기간에 무리하게 대통령실 이전을 강행하면서 내세웠던 논리다. 우리 정치의 오랜 폐단으로 지적돼 온 ‘제왕적 대통령제’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권위주의와 불통’의 공간인 청와대를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을 미국 백악관처럼 개방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최고의 지성들과 공부하고 도시락을 시켜 먹으며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회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이 실제 보여준 모습은 너무도 딴판이었다.

‘최고의 지성’이 앉아야 할 자리에는 ‘충성파 군인’들이 앉았고, ‘도시락’이 있어야 할 식탁에는 ‘폭탄주 세트’가 놓였다. ‘용산의 밤’은 지성의 언어 대신 “총으로 쏴죽이겠다”처럼 원초적인 분노의 배설로 채워졌다. ‘용산의 낮’은 낮대로 1시간 중 59분을 윤 전 대통령 혼자 떠드는 일방통행 회의가 ‘뉴노멀’이 되면서 ‘의대 2000명 증원’과 ‘R&D 예산 삭감’과 같은 정책 참사가 줄을 이었다.

이처럼 용산 이전으로 인한 긍정적 효과는 전무(全無)하다시피 했던 반면 부정적 효과와 소모비용은 막대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용산 이전에는 국방부 이사, 경호부대 이전, 외교부 공관 리모델링 등으로 832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이 과정을 다시 거꾸로 되돌리는 데는 추가로 5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한다. 500억 원은 청와대 복귀와 국방부-합참 원상 복귀에만 드는 돈으로,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이전 비용이 1조 원을 넘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지만, 용산 이전으로 인한 정치·사회적 후폭풍과 나비효과까지 고려한다면 이마저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따름이다.


조은석 내란 특검은 15일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대통령이 군 지휘부와 함께 군 기지 내에 위치하게 되었고, 대통령과 경호처장 지척에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공관 등 주요 군 지휘부의 공관이 위치함에 따라 대통령과 군이 밀착되는 여건이 조성되었다”고 했다. 즉, ‘용산 이전’이 윤 전 대통령이 ‘망상적 계엄’으로 발을 내딛는 데 있어서 ‘나비의 날갯짓’이 됐다는 이야기다.

윤석열 정권의 최대 리스크였던 김건희 비리의 상당 부분도 졸속 이전과 관련성이 크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한남동 관저에 입주하기 전까지 약 반년 동안을 아크로비스타 사저에서 머물렀는데, 최재영 목사의 디올백, 로봇개 사업자의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 통일교의 샤넬백 등이 이 시기에 아크로비스타 지하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건네진 것들이다. 또한 같은 시기 진행된 한남동 관저 공사도 유례없는 특혜와 불법으로 얼룩졌다. 대통령 관저라는 특급 보안시설 공사를 종합건설 면허도 없는 영세 인테리어업체가 수주한 것은, 김 여사와 이 업체 대표 간 얽히고설킨 인연을 빼놓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시대착오적 계엄과 대통령 가족의 비리 연루 등으로 인한 국격 추락과 사회적 갈등 비용은 추산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우리의 근세사에는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는 수치스러운 사건이 있었다. 1895년 일본의 외교관 군인 낭인 자객들이 경복궁에 난입해 명성황후를 시해하자, 그 이듬해 신변에 불안을 느낀 고종이 몰래 궁을 떠나 ‘아관’, 즉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했던 사건이다.

‘파천’은 원래 임금이 난리를 피해 머무는 장소를 옮기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의 경우 윤 전 대통령이 적극적 의지로 벌인 일이기는 하지만, 그 무모함과 조급증으로 인해 빚어진 혼란상과 부작용의 연쇄효과는 ‘파천’에 견주고도 남을 것이다. 그 3년 7개월을 잃어버린 세월로 치부하기에는 우리가 치른 국가적 비용이 너무나 크다. 그 실패를 두고두고 반면교사로 삼아 경계하는 것만이 그 손실을 조금이라도 만회하는 길일 것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사실(史實)’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무속 논란을 포함해 용산 이전의 진정한 동기와 장소 선정 과정, 공사업체 선정 경위와 특혜, 이에 대한 봐주기 감사 논란 등 아직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다. 이런 의혹들을 끝까지 규명해 ‘사초(史草)’로 남기는 것이 ‘용산파천’ 같은 흑역사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게 하는 첫걸음이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브리지트 바르도 별세
    브리지트 바르도 별세
  2. 2한학자 통일교 조사
    한학자 통일교 조사
  3. 3박근형 이순재 별세
    박근형 이순재 별세
  4. 4김종국 위장 결혼 의혹
    김종국 위장 결혼 의혹
  5. 5손흥민 리더십
    손흥민 리더십

동아일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