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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想과 세상]반짝반짝 아는 척 좀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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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갑자기 떠나도 떠난 것 같지 않아요
어금니 꽉 깨물고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아요

한겨울 아침 날벼락에
꽃송이 통째로 떨어진 동백꽃이여
일백칠십아홉 송이 송이 송이
마침내 일백칠십아홉 개의 별이 되었으니
밤하늘 바라보며 두 손을 흔듭니다

별빛 두 눈 반짝반짝 아는 척 좀 해 주세요
밤마다 입술 깨물며 겨우겨우 잠이 듭니다
꿈속에서라도 못다 핀 동백꽃을 피워주세요

그대 갑자기 떠나도 떠난 것 같지 않아요
언제나 살아생전 그대로 그 모든 곳에 있어요

이원규(1960~)

12월29일, 오늘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이다. 1년 전 그날, 분명 “우리”와 함께 숨을 쉬던 존재들이었는데, 한순간에 179명의 숨결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남겨진 자들은 충분히 슬퍼하고 추모해야 하는데,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너무도 빠르게 진실과 함께 묻혀버렸다. 얼마 전, 이 참사를 추모하기 위한 시집 <보고 싶다는 말>이 출간되었다. 추모 시집에 수록된 이 시는 “한겨울 아침 날벼락”에 대해, “일백칠십아홉 송이 송이 송이”가 “일백칠십아홉 개의 별”이 되어버린 일에 대해 쓰고 있다. 시인은 별이 된 사람들에게 “별빛 두 눈 반짝반짝 아는 척 좀 해” 달라고, 우리도 두 눈을 반짝이며 당신들을 잊지 않고 마주 보겠다고 노래한다. 그 슬픈 별들을 바라보며, 함께 공명하며 애가를 부르는 시인들이 있다. 시가 무슨 힘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도 시가 지닌 진실의 힘을 믿기로 한다. 진실은 드러날 때, 비로소 길을 밝혀주는 빛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진실의 끈을 붙잡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의 빛을 건네는 시를 천천히 읽으며 마침표를 찍는다.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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