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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일대우버스’, 사라진 회사와 싸우다 [6411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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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12일, 울산 길천산업단지 내 자일대우버스 공장 정문에 폐업 공고문이 붙어 있다. 회사는 당일 해고 문자를 받은 직원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문을 닫아걸었다. 필자 제공

2022년 7월12일, 울산 길천산업단지 내 자일대우버스 공장 정문에 폐업 공고문이 붙어 있다. 회사는 당일 해고 문자를 받은 직원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문을 닫아걸었다. 필자 제공




박재우 | 자일대우버스 해고자



2022년 7월12일 기다리던 통근버스는 오지 않고 ‘회사 폐업을 이유로 이 시간부로 근로계약을 종료한다’는 문자만 도착했습니다. 급하게 회사로 모인 노동자들은 굳게 닫힌 공장 정문에 붙은 ‘폐업 공고문’을 보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해고 예고’도 없이 울산공장 노동자 272명은 모두 한순간에 해고자가 되었습니다.



자일대우버스는 대중교통 버스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70년 역사를 가진 향토 기업입니다. 2003년 대우자동차 부도 이후 ‘영안모자그룹’이 버스사업부를 인수하면서 ‘대우버스’로, 이후 여러 차례 상호 변경을 거쳐왔지요.



2020년 3월, 자일대우버스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영안모자그룹 총수 일가는 버스 생산기지인 울산공장을 폐쇄하고 베트남으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사실상 울산공장 전체 인원인 355명을 1차 정리해고 했습니다. 이에 노동자들은 공장에 천막 40동을 치고 240일간 먹고 자며 부당해고를 외쳤고,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결정을 받았습니다.



회사는 부당해고로 인한 미지급 임금을 줄 돈이 없다며 저희에게 양보를 요구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실업급여만으로 생계를 해결하던 우리는 그 요구를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리해고 기간이 길어지면서 부품사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과 다른 경쟁사 버스를 구입할 수밖에 없는 운수회사와 고객들까지 외면할 수는 없었어요. 우리는 미지급 임금을 양보하고 공장 정상화를 위한 임금 삭감과 순환 휴직에 합의하며 2021년 6월21일 어렵게 복직을 했었습니다.



복직했지만 해고 기간 생긴 생계비 대출금은 갚을 엄두도 내지 못했고, 휴업수당으로 살아야 했기에 사실 복직 투쟁은 상처뿐인 승리였습니다. 그래도 절반의 인원들은 출근해서 해고 기간 멈춰 있던 공장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한여름 작업복이 땀으로 다 젖어도 기쁜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해고 직전 공장에 방치되어 있던 미완성 버스 200여대를 여섯달 만에 완성하며 공장 정상화를 위한 약속도 지켰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미완성 버스가 완성되자 신규 주문 물량이 없다는 이유로 무기한 무급휴업을 거론했어요. 언제 복귀할 수 있는지, 어떤 계획이 있는지 물어도 묵묵부답이었어요. 대신 임금은 회사가 정하는 임금만 받고 단체행동, 단체교섭, 쟁의행위는 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는 사람들만 새로운 회사를 설립해 재채용하겠다며,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회사를 폐업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공장 정상화라는 희망을 이용해 미완성 버스 200여대를 완성해 판매함으로써 경제적 이익만 챙긴 것입니다. 자일대우버스는 영안그룹 총수 일가의 계획처럼 2022년 7월12일 폐업했습니다. 우리는 복직 1년 만에 또다시 해고자가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출근하겠다고 다짐하던 해고자의 삶을 반복해야 한다는 게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복직 소식을 전할 때 고생했다며 눈물 흘리시던 어머니와 투쟁 현장에 나갈 때마다 묵묵히 견뎌준 아내에게 다시 해고자가 되었다는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하나.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대로 억울하게 회사를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회사의 위장폐업에 맞서 두번째 부당해고 투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버스 생산과 연구개발에 필요한 공장부지, 건물, 생산설비, 기계장치 심지어 부품사 거래 관계 일체까지 영안모자 총수 일가의 둘째 아들 회사인 ‘자일자동차’로 이전되어 베트남 공장으로 생산기지를 옮겨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많이 지칩니다. 두번째 해고자의 삶을 산 지도 어느덧 3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낸 지도 한참 되었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는 내년에 고등학교에 갑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투쟁도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견뎌낸 결과 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위장폐업, 부당해고를 인정했습니다. 회사의 거듭된 재심, 행정법원 1심, 항소심에서도 “자일대우버스 폐업은 위장폐업이며 자일자동차의 고용승계 거부는 부당해고”라는 일관된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제 대법원 선고만 남았습니다. 많이 지쳐 있지만, 우리는 오늘도 복직하는 날을 꿈꾸며 사라진 회사에서 투쟁을 외치고 있습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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