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신한은행 세계 기선전에서 4강에 오른 박정환, 당이페이, 시바노 도라마루, 왕싱하오(오른쪽부터)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기원 |
박정환 9단이 나 홀로 생존하며 한국 바둑의 자존심을 지켰다. 박정환은 28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1회 신한은행 세계 기선전 8강전에서 '일본 바둑 1인자' 이치리키 료 9단을 상대로 183수 흑 불계승을 거뒀다.
이날 8강에 오른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4강행 티켓을 거머쥔 박정환은 29일 오후 2시 서울 명동 로얄호텔에서 중국 당이페이 9단과 결승행 티켓을 놓고 맞대결을 펼친다. 같은 날 오전 10시에는 중국 왕싱하오와 일본 시바노 도라마루 9단이 맞붙는다.
이날 박정환의 승리는 어떤 때보다 값졌다. 오전에 열린 '한중 맞대결'에서 '세계 최강' 신진서 9단은 물론 신민준 9단까지 왕싱하오와 당이페이에게 덜미를 잡혔기 때문이다. 오후에 출격한 김명훈 9단도 시바노에게 힘 한번 못 쓰고 패배했다.
박정환은 "초반 포석부터 중반까지는 원하는 대로 잘 풀려 80~90점은 줄 수 있다. 하지만 중후반에 백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실수가 있었는데 역전까지 허용하지 않고 잘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오전에 한국 선수들이 두 판 다 졌기 때문에 좀 더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내 바둑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28일 세계 기선전 8강에서 이치리키 료(왼쪽)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박정환 9단. 조효성 기자 |
'나 홀로 4강'을 기록했지만 박정환의 올해 기세는 좋다. 국내외 대회에서 통산 36승을 거둔 박정환은 올해 우승은 없지만 메이저 세계대회인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국내 대회인 하나은행 바둑 슈퍼매치와 SG배 한국일보 명인전에서도 준우승을 했다.
이날 승리로 박정환은 이치리키를 상대로 9전 전승을 기록하게 됐다. 상대 전적에서 압도적이지만 이치리키는 만만치 않은 상대다. 일본 바둑의 에이스이자 새롭게 역사를 쓰고 있는 선두 주자다.
그는 특히 2024년 '바둑 올림픽'으로 불리는 응씨배에서 일본 바둑 사상 첫 챔피언이 됐다. 메이저 국제대회로 확대해도 19년 만의 우승이다. 금수저로 유명한 이치리키는 도호쿠 지역 신문과 민영 방송국을 보유한 언론인 집안의 외아들로 가업을 이어받을 예정이다. 2016년 시험을 치러 와세다대 사회학부에 입학했고, 졸업식에서 대표 연설까지 했다. 한국과 인연도 깊다. 한국 홍맑은샘 4단(일본기원 소속)의 제자로 한국식 교육을 받은 걸로도 유명하다.
아쉽게 8강 무대에서 짐을 쌌지만 이치리키는 내년 1월에는 신민준 9단을 상대로 자신의 생애 두 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을 노린다.
이날 8강전 하이라이트는 오전에 열린 신진서와 '중국 톱랭커' 왕싱하오 간 자존심 대결. 하지만 신진서에게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실수 하나가 승부를 갈랐다. AI는 우상귀에서 92수를 두는 순간 신진서의 승률이 49%에서 22%로 추락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후 106수를 두는 순간 5.8%까지 떨어졌고 이후 역전 드라마는 쓰이지 않았다.
바둑계의 의견도 같았다. 대국을 해설한 송태곤 9단은 "한 번의 준악수와 한 번의 악수가 있었다고 본다"며 "92수를 두면서 상황이 나빠졌다. 악수는 106수다. 계속 어지럽게 판을 이끌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며 흑이 흐름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패배로 최근 3연승에 제동이 걸렸고 공식 대회 통산 전적은 4승2패로 좁혀졌다. 왕싱하오는 "오늘 초반부터 미리 연구했던 국면으로 돌아갔다. 초반에는 조금 자신이 없었고 중반까지도 크게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돌아본 뒤 "이후 상대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후반으로 가면서 스스로 경기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오전에 경기를 펼친 신민준은 당이페이에게 219수 만에 불계패했다.
내년 2월 열리는 결승전을 향한 마지막 대국. 세계 기선전 4강은 명동 로얄호텔 특설 대국장에서 펼쳐진다. 매경미디어가 주최하고, 한국기원이 주관하며, 신한은행이 후원하는 제1회 신한은행 세계 기선전은 우승 상금이 세계 최고인 4억원, 준우승 상금은 1억원이다.
제한 시간은 시간 누적(피셔) 방식으로 각자 30분에 추가 시간 20초가 주어진다.
[조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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