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매일경제 언론사 이미지

[기고] AI가 버린 데이터에 '혁신' 숨어있다

매일경제
원문보기
김의석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김의석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우리 연구소 현장의 풍경은 기묘하다. 밤을 새워 실험실을 지키던 연구원들의 모습 대신 수천 개의 가상 시뮬레이션을 동시에 돌리는 인공지능(AI) 에이전트들이 24시간 내내 신물질을 탐색하고, 설계도의 결함을 수정한다. 데이터 처리 속도는 100배 빨라졌고, 비용은 10분의 1로 줄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연구원장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하루 만에 분석이 끝나고, 결과물의 완성도는 높아졌는데, 왜 세상을 놀라게 할 '한 방'은 나오지 않는가?"

그 이유는 우리가 도입한 AI가 너무나 똑똑하고 합리적이지만 본질적으로 '확률'의 기계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축적된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여, 가장 성공 확률이 높은 패턴을 찾아낸다. 이는 기존 제품의 성능을 개선하는 '점진적 혁신'에 있어서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AI는 정규분포 곡선의 가장 높은 곳, 즉 '평균의 정점'으로 기업을 안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바꾼 '돌파적 기술'은 결코 평균의 정점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항상 데이터의 분포를 벗어난 통계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상치에서 탄생했다.

그렇다면 이제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AI를 버리고 과거의 주먹구구 식 실험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AI 시대의 연구개발(R&D)은 기존 제품의 효율을 높이고 최적화하는 영역은 인간보다 월등한 AI가 맡되 다른 한 축은 의도적으로 '인간의 딴짓'과 '비효율'이 가능하도록 시스템화해야 한다.

먼저, '노이즈 보존 구역'을 설정해야 한다. AI가 '이 결과는 오차 범위 밖입니다'라고 경고하며 버리려는 데이터들을 인간 연구원이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프로세스를 강제해야 한다. AI가 '쓰레기'로 분류한 데이터 더미 속에 차세대 먹거리가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탐색'과 '활용'의 분리다. AI는 이미 아는 지식을 활용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반면 인간은 모르는 곳을 헤매는 탐험에 특화되어 있다. 기업은 연구원들에게 'AI가 하기 어려운 엉뚱한 가설을 세우라'고 주문해야 한다. 핵심 성과지표 역시 성공률이 아니라 AI의 예측을 얼마나 벗어난 시도를 했느냐로 평가받아야 한다.

셋째, 리더십의 변화다. 과거의 R&D 리더는 프로젝트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관리자였지만 이제는 '확률에 저항하는 자'여야 한다. 성공 확률이 낮은 위험한 길에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문제 맥락에 따른 과감한 사고 전환과 때론 거친 직관력이 필요하다.


진화론적으로 볼 때 생존에 가장 유리한 개체는 가장 완벽한 개체가 아니라,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변종을 품고 있는 집단이다. AI는 우리에게 완벽함을 선물하지만, 변종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 기업의 R&D센터가 너무 조용하고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위기 신호다. 지금 당장 그 매끄러운 상황에 '비효율적인 딴짓'의 모래알을 던져야 한다. 혁신은 언제나 효율성이 멈추는 곳에 있었으며, 그 삐걱거리는 소음 속에 100조원짜리 기회가 숨어 있을 수 있다.

[김의석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박근형 이순재 별세
    박근형 이순재 별세
  2. 2강민호 FA 계약
    강민호 FA 계약
  3. 3브리지트 바르도 별세
    브리지트 바르도 별세
  4. 4통일교 로비 의혹
    통일교 로비 의혹
  5. 5런닝맨 김종국 결혼
    런닝맨 김종국 결혼

매일경제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