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단상 아래 오른쪽 둘째)가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종결 투표를 마치고 우원식 국회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김재훈 기자 |
“대통령 5년 임기가 너무 짧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는 김민석 국무총리 발언을 놓고 논란이 있었다. 그 말에 무슨 정치적 함의가 담겼다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그 병이 도질 때가 되었다’는 느낌은 있다.
그 병이란 대통령과 정권이 자신들이 굉장히 많은 일을 한다고 착각하는 병이다. 임기 반년이 지났으니 자리에 적응할 시점이다. 기획한 대로 세상이 돌아가는 걸 바라보는 재미는 상당할 것이다. 그때 정권은 ‘5년이 참 짧다’고 느낀다. ‘남은 1년을 어떻게 버티나’ 하는 시점이 운명처럼 들이닥칠지언정 당장은 그렇다.
“윤 대통령은 날로 자신만만해지는 느낌을 준다. 내 기억으로는 지난해 연말 화물노조 파업이 전기였던 것 같다. 민주노총을 거세게 몰아붙이면서 보수층이 결집하고 지지율이 올라갔다. 야당 대표에 대한 검찰수사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이재명 리스크에 묶인 더불어민주당은 좀처럼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위의 글은 2023년 2월 26일에 쓴 것이다. 그때는 국민의힘 대표 경선에 ‘윤심’ 논란이 불거지고, 국가수사본부장에 부적격자를 임명했다가 하루 만에 사표를 내는 등 인사 사고가 빈발했다. 생각하면 윤석열 정부의 에고가 램프 뚜껑 밖으로 막 탈출하던 시점이었다.
그때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이거 뭐 별거 아니네’하는 착각에 이미 빠졌던 것 같다. 2022년 연말 화물노조 파업을 소신껏 수습했다는 여론의 평가가 가뜩이나 비대한 그의 자아를 한껏 고양했을 가능성이 있다. 윤은 그때 ‘5년은 너무 짧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화물노조 파업에서 자신감을 얻었다면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한미 관세협상 타결이 비슷한 계기가 되었을 수 있다. 근자에 이 대통령은 ‘전지전능’을 뽐내고 있다. 원래 그런 성격이기도 하겠지만 경주 APEC 이후 더 자신만만해진 것 같다. 임기제한없는 대통령의 기세가 보인다.
초보운전자가 제일 위험할 때는 운전이 쉽게 느껴질 때다. 이 정권이 첫 번째 치적으로 내세우는 한미 관세협상은 치적이 될지, 제2 을사늑약이 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미국에 주기로 한 3500억 달러 총액 자체가 우리 체급에는 터무니없었다. 일본이 5500억 달러라면 우리는 2000억~2500억 사이여야 했다. 신의 한 수처럼 거론되는 매년 200억 달러 분납은 1회 납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외환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10년을 무탈하게 버티려면 기도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모르는 척 하는 사이에 더불어민주당은 논쟁 법안들을 숨도 고르지 않고 통과시켰다. 일일이 거명하기도 힘이 드는 그 무수한 법률 중에 민주당이 소수당이 되었을 때 살아남을 법안이 과연 한 개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여당은 사법 독립과 언론 자유를 계엄도 하지 않고 한 시대 전으로 후퇴시켜 버렸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은 이것도 개혁이라고 한다. 그런걸 개혁이라고 말한 세력이 앞서 있었는데 자코뱅과 볼셰비키들이 그랬다. 윤석열은 기행 같은 계엄으로 역사적 퇴행에 개혁이라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타락한 부르봉, 로마노프 왕조의 혼군이 그랬듯이 말이다.
올해 여당이 한 일을 개혁이라고 한다면 세상에 개혁만큼 쉬운 일이 없을 것이다. 모래성 쌓기. 정권이 바뀌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모래성을 만리장성처럼 쌓고 있다.
진짜 개혁은 힘이 든다. 장기적으로 국가에는 이롭지만 단기적으로는 정권을 잃기도 한다. 내가 뿌린 씨앗을 내 편에서 거두란 법이 없다. 정부 여당이 한 일 중에 이런 리스크를 지고 한 일이 무엇인지 하나라도 있으면 알려 달라.
정권이 ‘5년 임기가 짧다’고 느끼거나 농담으로라도 말할 수 있으려면 그만한 일을 벌이고 난 뒤여야 한다. 지지층인 기득권을 상대하는 용기, 다음 정권이 이어받지 않을 수 없는 과제, 30년 후 이 나라를 먹여 살릴 우물 파기. 그런 일을 하면서도 임기가 짧게 느껴진다면 진정한 일꾼의 자격이 있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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