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재무부는 스테이블코인이 은행 계좌와 비슷한 수준의 수익률을 제공한다면, 은행 시스템에서 최대 6조6000억달러 예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파이넌스마그넷츠] |
[헤럴드경제=유동현·경예은 기자] 스테이블코인의 장점은 글로벌 결제 시장에서 빛을 발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으로 국제 결제 시 송금 수수료는 기존 6~7%에서 1% 내외로 감소한다. 적절한 ‘온오프 램프’(법정화폐와 디지털자산 변환) 인프라가 갖춰지면 전체 결제 과정은 5분 내로 줄어들 걸로 관측된다. 블록체인에 모든 기록이 저장되고 투명하게 공개되는 만큼 거래 과정의 신뢰는 제고된다.
B2B 거래비 최대 40% 절감…스테이블코인 카드 수수료 1%↓
기대되는 부분은 기업 간 거래(B2B)다. 통상 국내 다국적 기업이 자금을 이체하면 본사와 해외 법인·자회사 사이 외화 송금이 발생한다. 달러 등 외화를 매수하고 매도 시 환전 비용·은행 중개 수수료 등 비용이 붙는다. B2B 거래 대금으로 스테이블코인이 활용되면 비용·시간 절감 효과는 물론 기업의 신속한 자금조달에 따른 유동성 공급도 용이하다. 글로벌 웹3 컨설팅기업 안티르(antier)는 기존 기업 거래 비용이 최대 40% 절감될 거라 예측한다.
B2B 거래 시 스테이블코인 수수료를 특정하긴 어렵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아직 법제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경 간 거래 시 컴플라이언스 등 안정성이 보완되면 개인 지갑에서 이용 시 발생하는 수수료(통상 1달러 미만)보다는 높을 거란 관측이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무역 결제는 그동안 상대방을 모르니까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만을 통해서 보내고 신용장 거래를 해왔던 고비용 구조가 개선된다”고 설명했다.
전통 금융도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은 스테이블코인을 규율한 지니어스(GENIUS) 법안 통과 하루 뒤 자체 스테이블코인 ‘JPMD’ 출시를 공식화했다. 지난 11월 출시된 JPMD는 USDT·USDC와 달리 허가받은 기관 고객만 접근가능한 ‘허가형(permissioned)’ 구조다. 은행의 신뢰를 앞세워 기관 수요를 확보하겠단 전략이다. 여기에 이자까지 지급하는 ‘예치형 토큰’ 형태로 발행된다. 뱅크 오브 뉴욕 멜론(Bank of New York Mellon)과 HSBC 등 글로벌 은행도 이와 유사한 예치 토큰을 개발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지니어스법 제정 후 생태계가 구축되면서 전통 금융을 위협하고 있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아르테미스(Artemis)에 따르면 2024년 10월부터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은 글로벌 카드 1위사 비자를 앞질렀다. 지난 10월부터 격차는 2조달러를 넘어섰다. 스테이블코인은 자동청산결제시스템(ACH)에 이어 글로벌 결제 수단 2위로 올라섰다.
은행은 수신 기반 약화·이자 및 수수료 수익 감소가 불가피하다. 미 재무부는 스테이블코인이 은행 계좌와 비슷한 수준의 수익률을 제공한다면, 은행 시스템에서 최대 6조6000억 달러 예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니어스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이자 지급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용자는 디파이(DeFi·탈중앙금융)나 거래소 예치를 통해 이미 연 4% 이상 이자를 얻을 수 있다.
이용자들은 스테이블코인을 실결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유럽·일본·홍콩 등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카드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매장에서 결제하는 방식이다. 레돗페이 등 비자의 스테이블코인 수수료는 약 1% 수준이며, 엔화테스테이블코인 JPYC의 수수료도 1엔(약 9원) 미만으로 저렴하다. 특히 해외에서 사용 시 통상 카드의 환전 수수료(1~2%)보다도 낮다. 핀테크 업체는 파격 수수료를 앞세워 자사 플랫폼으로 고객을 유입하고 있다. 페이팔은 내년 7월 말까지 ‘페이 위드 크립토’ 수수료를 0.99%로 제공한다. 기존 자사 수수료(2.29%~4.99%)보다 대폭 낮췄다.
스테이블코인은 결제․송금 수단을 넘어 ‘투자 및 금융 인프라’로도 인식되고 있다. 미국 유타주에 거주하는 20대 직장인 A씨는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송금을 해오다 최근 들어 보유로 돌아섰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은 언제든 다른 투자자산이나 금융 서비스로 연결할 수 있는 유연성(flexibility)이 있다”며 “앞으로 스테이블코인 기반 연계 서비스가 늘어날 것 같아 구매해 두고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바이낸스에 따르면 월간 활성 사용자 88%는 이처럼 스테이블코인을 단순 매매가 아닌 저축·결제·환전 등 실용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유로 스테이블코인 출시 후 1000% 증가…일본 이어 홍콩도 내년 인가 관측
유럽연합(EU)은 지난해 6월 가상자산시장규제(MiCA·미카)를 단계적으로 시행하며 디지털자산을 통합하는 규제 틀을 마련했다. 미카는 디지털자산을 전자화폐토큰(EMT)과 자산참조토큰(ART)으로 구분해 관리하고 있다. 단일 법정통화에 일대일로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은 EMT에 해당한다.
미카 시행 이후 유로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급성장했다. 주요 유로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월간 거래량은 3억8300만달러에서 38억달러로 8배 이상(899%) 늘었다. 서클의 EURC와 소시에테제네랄(SG)의 기관용 스테이블코인 EURCV의 거래량은 각각 1139%, 343% 증가했다. 규제 불확실성 해소가 실사용 확대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민간 외에 BNP파리바·ING·유니크레딧 등 유럽 주요 은행 10곳은 내년 하반기께 유로 스테이블코인 출시를 준비 중이다. 미국이 지니어스(GENIUS) 법 제정 이후 달러 스테이블코인 확산이 거세자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아시아도 제도화에 속도가 붙고 있다. 일본은 지난 10월 핀테크사 JPYC가 처음으로 엔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했다. 두 달 만에 유통량은 3억만엔을 넘어섰고 3년 간 10조엔을 목표로 한다. 홍콩도 이르면 내년 초께 스테이블코인 인가가 예상된다. 홍콩 보험감독청(IA)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인가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시행된 ‘스테이블코인 조례’에 따라 홍콩에서 법정화폐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면 홍콩통화청(HKMA)로부터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식이다.
싱가포르는 기존 법체계를 활용해 빠르게 규제 명확성을 확보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통해 지난 9월부터 디지털자산 거래소 OKX는 그랩페이(GrabPay) 가맹점에서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지원하고 있다. USDC·USDT로 결제한 금액은 싱가포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XSGD’로 전환 후 정산된다. 싱가포르 메트로(Metro) 백화점 체인도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도입하면서 유통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신흥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화폐 역할을 대신하는 금융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만성적인 초인플레이션과 환율 불안에 따라 스테이블코인이 자산 가치 보존 수단이자 결제·송금 수단이 됐다. 오는 1월부터는 전역 24만개 이상의 가맹점에서 디지털자산 결제가 허용된다. 주로 사용되는 수단은 USDT와 USDC로 국가 차원에서 스테이블코인 채택이 일상 결제로 확산한 사례로 평가된다. 산티아고 에스코바 현지 경제 전문가는 헤럴드경제에 “아르헨티나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단순 디지털자산이 아닌 인플레이션과 반복되는 외환위기를 버티기 위한 ‘사회적 기술’(social technology)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