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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이면 완판 된다, 192년전 '조선인싸템' 인기 비결 [비크닉]

중앙일보 이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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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감을 살린 공간으로 리뉴얼을 마친 K-헤리티지 스토어 덕수궁. 전통문화 굿즈부터 공예작품까지 다양한 문화상품으로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사진 국가유산진흥원

개방감을 살린 공간으로 리뉴얼을 마친 K-헤리티지 스토어 덕수궁. 전통문화 굿즈부터 공예작품까지 다양한 문화상품으로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사진 국가유산진흥원


올해 가장 뜨거웠던 트렌드를 꼽으라면, ‘K컬처’가 아닐까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은 관광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외국 관광객의 필수 코스인 4대궁(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과 종묘 방문객은 지난해 역대 최대인 1322만명을 기록했고 꾸준히 상승 중입니다. 국가유산을 주제로 한 문화상품의 약진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궁궐 향을 재현한 향수처럼 문화유산의 스토리텔링을 녹여낸 제품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단순한 관광 기념품을 뛰어넘었다는 평가입니다. 2030세대의 일상을 파고드는 기획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조선왕실등은 매회 10분만에 완판되는 ‘품절템’이죠. 지난해 국가유산진흥원의 문화상품 매출액은 약 119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는데 올해는 160억원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수년 전부터 이런 흐름을 읽고 브랜딩을 강화한 게 주효했는데요. 비크닉이 새롭게 단장한 덕수궁 K-헤리티지 스토어를 찾아가 비결을 알아봤습니다.



공간도 경험이다, 궁궐을 차경삼은 K-헤리티지 스토어



입구인 대한문을 지나 정관헌으로 가는 연못 옆에 위치한 K-헤리티지 스토어. 사진 국가유산진흥원

입구인 대한문을 지나 정관헌으로 가는 연못 옆에 위치한 K-헤리티지 스토어. 사진 국가유산진흥원



지난 2일, 덕수궁 문화상품 매장인 ‘K-헤리티지 스토어 덕수궁’이 리모델링을 마치고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이곳은 2007년 국가유산진흥원에서 처음 연 문화상품관 겸 카페로, 18년 만에 낡은 공간을 정비한 건데요. 기존 한옥 건물을 그대로 두고 창문을 가렸던 벽을 걷어내 궁궐과 연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개방감을 살렸습니다. 창가 자리는 연지의 사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명당이 되었죠. 23평 내외의 작은 공간인 만큼 중앙에 계단식 목재 진열대를 설치해 동선을 효율적으로 설계한 점도 돋보입니다.

절제된 디자인을 입혀 한옥 특유의 전통미를 드러나게 했죠. 국가유산진흥원 진나라 공예산업진흥실장은 “덕수궁은 시청역 옆이라 접근성이 좋아 관광객뿐 아니라 주변 직장인이나 현대미술관을 찾는 방문객, 근현대 시기의 분위기를 느끼려는 젊은 관람객이 많이 찾는다”며 “궁궐을 상징하는 작은 기념품이나 대한제국 시기의 정취를 담은 문화상품이 인기”라고 들려주었어요. 최근 ‘케데헌’의 열풍으로 호랑이를 주제로 한 상품과 일월오봉도 부채·갓도 인기 상품이 되었죠. 달항아리·찻잔·유기수저·옥 장신구처럼 장인이 제작한 공예품도 외국인 관광객의 이목을 끕니다.

미니멀한 카페 공간과 단차를 활용해 시야에 개방감을 준 진열대. 전통 한옥의 재료인 목재를 사용해 궁궐의 고즈넉함을 표현했다. 사진 국가유산진흥원

미니멀한 카페 공간과 단차를 활용해 시야에 개방감을 준 진열대. 전통 한옥의 재료인 목재를 사용해 궁궐의 고즈넉함을 표현했다. 사진 국가유산진흥원


K-콘텐트 흥행과 더불어 인기를 끄는 호랑이, 일월오봉도, 갓 등 전통 문양을 주제로 한 굿즈들. 이소진 기자

K-콘텐트 흥행과 더불어 인기를 끄는 호랑이, 일월오봉도, 갓 등 전통 문양을 주제로 한 굿즈들. 이소진 기자





전통에 브랜드를 입히다



최근 K콘텐트의 굿즈 열풍, 판소리 퓨전 밴드 이날치의 성공 사례를 보면 전통의 현대화를 몸소 느낄 수 있습니다.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감각에 맞게 변화해야 시대와 호흡할 수 있다는 건데요. 기업들이 관심을 갖던 ‘브랜딩’이 국가 차원으로 확장되는 흐름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국가유산진흥원은 지난해 12월, 전통 문화 상품을 브랜드 단계로 끌어올리는 시도를 했어요. 기존에도 ‘K-헤리티지’를 이름으로 쓰고 있었지만, 대중의 인지도가 낮은 것이 문제였거든요.

새로운 BI는 ‘K’와 ‘H’자가 이어지는 모양으로 사람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연결성을 표현했다. 국가유산진흥원 제공

새로운 BI는 ‘K’와 ‘H’자가 이어지는 모양으로 사람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연결성을 표현했다. 국가유산진흥원 제공


감각적인 디자인과 일원화된 메시지를 담은 리브랜딩이 통하면서 사람들에게 차별화된 인식을 심어줬죠. 온·오프라인 명칭이 달랐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K-헤리티지 스토어’로 통일하고 새 브랜드 아이덴티티(BI)를 적용하고 있어요. 덕수궁을 시작으로 단계별로 매장 리뉴얼을 앞두고 있는데요. 2026년에는 국립고궁박물관 매장을 재단장하고,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경복궁에는 2028년까지 1000평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 소장하는 유물…스토리텔링 통했다



덕수궁을 주제로 황실의 오얏꽃 문양과 근현대 건축물·오브제의 조형적 형태를 재현한 문화상품. 사진 국가유산진흥원

덕수궁을 주제로 황실의 오얏꽃 문양과 근현대 건축물·오브제의 조형적 형태를 재현한 문화상품. 사진 국가유산진흥원



K-헤리티지의 상품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뉩니다. 국가유산진흥원 공예기획팀에서 직접 기획하는 ‘자체 제작품’, 누구에게나 열린 ‘공모 선정작’ 그리고 국가 무형유산 전승 공예품인 ‘K크래프트(K.CRAFT)’ 입니다. 자체적으로 상품을 기획하고 동시에 좋은 아이디어로 국가 유산을 소개하는 제품이라면 홍보 창구가 되어 주겠다는 취지입니다. 그래서 2000원대 메모지부터 소목장이 제작하는 수천만원대 수납장까지 넓고 다양합니다.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을 물었더니 ‘오얏꽃 오일 램프’란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대한제국의 상징인 오얏꽃 문양(이화문)은 왕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양입니다.

문화상품팀은 덕수궁의 샹들리에와 유리 등갓에 새겨진 문양들을 연구해 타원형의 오일 램프 개발했어요. 오얏꽃 시리즈는 개화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디자인과 더불어 코로나 시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2030세대에게 입소문을 타면서 스테디셀러가 됐죠. 조선왕실등은 1828년 효명세자가 어머니 순원왕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연 야간 연회 기록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제품입니다. 꼼꼼한 사료 검증을 통한 스토리텔링이 통한 걸까요. 매회 10분 만에 완판되는 효자템이 되었죠. 진나라 실장은 이런 문화상품의 흥행을 두고 “유물을 우리 집에 소장할 수 있다는 인식의 발견”이라고 정의합니다. 일반인이 고려청자를 집에 갖다 놓을 수는 없어도 청자 형태의 오일 램프를 바라보며 국가유산을 소장한 기분과 함께 ‘불멍’할 수는 있다고요.



쓰임새 담은 ‘살아있는 유산’



대한제국 시기 조명을 현대적 디자인으로 재해석하려는 취지로 조명 브랜드 일광전구와 컬래버레이션한 스노우맨8 포터블 오얏꽃. 국가유산진흥원 홈페이지

대한제국 시기 조명을 현대적 디자인으로 재해석하려는 취지로 조명 브랜드 일광전구와 컬래버레이션한 스노우맨8 포터블 오얏꽃. 국가유산진흥원 홈페이지


K-헤리티지의 기획 상품은 올해 75품목 개발됐는데 출시까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이 걸립니다. 오얏꽃이나 조선왕실등의 사례처럼 상품에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자료 조사에 공을 들입니다. 무엇보다 요즘 사람들의 쓰임새와 맞닿는 지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해요. 요즘 유행하는 리빙 제품 시장 조사부터 트렌드 흐름까지 끊임없이 공부합니다. 기성품에 그림만 찍어내는 기념품이 아닌, 오래 걸리더라도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제품을 만듭니다. 수년 전부터 차근차근 쌓인 내공에 올해 6월 공개된 ‘케데헌’의 성공이 더해져 K-헤리티지 스토어의 인기도 급물살을 탔습니다. 올해만 외부 요청으로 더 현대 서울을 비롯해 7곳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었죠. 이제 이 열풍을 어떻게 이어갈지가 관건입니다. 진나라 실장은 “전통 문화 상품에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는 분위기는 매우 고무적”이라며 “앞으로는 국유산 자체를 활용한 폭넓은 상품들을 기획해 내년 7월 부산에서 개최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K-헤리티지의 사례는 국가유산이 유물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와 소통하는 ‘살아있는 유산’으로서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일상에서 쓰임을 다하는 문화상품을 통해 K컬처의 외연도 한층 넓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이소진 기자 lee.soj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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