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월 19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외교부(재외동포청)·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2월 19일 통일부 업무 보고에서 북한 노동신문 개방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북한 노동신문을 국민들한테 못 보게 막는 이유는 뭐예요? 국민들이 그 선전전에 넘어가서 빨갱이 될까 봐 그거 아닌가요? 원래? (맞습니다.) 근데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북한의 실상을 정확하게 이해해서 야, 저러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걸 왜 막아 놓습니까? 언론은 보게 하고 국민은 못 보게 하고…”라고 언급했다. 이 대통령의 이러한 언급은 부분적으로는 동의할 수 있으나,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우선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을 살펴보자. 이 대통령이 노동신문의 존재 목적이 ‘선전전’에 있다고 인식하는 부분이다. 북한의 모든 매체는 선전전 수단으로 기능한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언론은 북한에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데 선전전과 심리전은 서로를 포괄하는 개념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심리전의 사전적 정의는 “첫째, 대상 목표(국가, 집단, 개인 등)의 의견, 감정, 태도 및 행동에 영향을 주기 위하여 선전 및 기타의 행위를 계획적으로 수행하는 것으로, 광의로는 국가 목적 달성이나 정책 시행을, 협의로는 군사 임무 달성에 기여하는 전투 행위를 의미하며, 둘째, 국가 정책의 효과적인 달성을 지원하기 위하여 아측이 아닌 기타 모든 국가 및 집단의 견해, 감정, 태도, 행동을 아측에 유리하게 유도하는 선전 및 기타 모든 활동의 계획적인 사용”을 말한다. 이러한 개념 정의에서 알 수 있듯, 심리전 역시 선전을 통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다. 여기서 핵심적인 요소는, 심리전 성공을 위해서는 그 대상이 심리전 혹은 선전전을 행하는 주체의 행동을 의도적인 목적 달성 행위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즉, 의도성을 간파했을 때 선전 혹은 심리전의 대상은 거부감을 갖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목적 달성이 불가능해진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재명 대통령 언급처럼 우리 국민의 높은 수준을 고려할 때, 노동신문을 접할 경우 당연히 거부감을 가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노동신문 보도에 대해 우리 국민이 거부감을 갖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노동신문이 북한 주민만을 대상으로 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 정서와 우리의 인식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존재하므로 거부감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시 말해, 노동신문은 북한 주민들을 세뇌하기 위한 도구로 기능하며, 그렇기 때문에 북한 주민에게 최적화된 선전 및 세뇌 수단이라 규정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노동신문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게 될 경우, 북한은 대내 선전 수단인 노동신문을 대남 심리전의 수단으로 그 성격을 전환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여기서 이재명 대통령의 다른 언급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12월 17일 업무 보고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요즘은 재래식 언론이라고 그러던데, 특정 언론들이 스크린해 가지고 보여주는 것만 보이던 시대가 있었다”며 “그럴 때는 게이트키핑 역할을 하면서 자기들이 필요한 정보만 전달해 주고 아닌 것은 가리고, 필요하면 살짝 왜곡하고, 이러면 국민들은 그것밖에 못 보니까 많이 휘둘렸다”고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게이트키핑은 이 대통령 언급처럼 ‘자기들이 필요한 정보만 전달해 주고 아닌 것은 가리는’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게이트키핑이 레거시 미디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허위 정보 혹은 가짜뉴스를 선별하여 걸러내는 필터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는, 현재 우리나라처럼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한 사회에서는 정치적 진영에 따라 ‘믿고 싶은 것’ 혹은 ‘진실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상이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진실’을 주관적이고 진영 논리에 입각한 관점에서 수용하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이때 게이트키핑은 최소한 이런 상황의 악화를 방지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정보’와 ‘사실’을 명확히 구분하기 때문이다.
레거시 미디어의 게이트키핑 기능이 허위정보를 효과적으로 선별할 수 있는 주요 요인 중 하나는 바로 레거시 미디어 구성원의 ‘전문성’에 기인한다. 전문성이 결여되거나 부재할 경우, ‘정보’와 ‘사실’을 구분하기란 극히 어렵다. 여기서 정치학자 라클라우의 ‘청중 민주주의(audience democracy)’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청중 민주주의’란 매체 영향력이 강화될수록 국민이 많은 정보를 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보와 사실을 구분하지 못해 무대 뒤쪽으로 소외되고, 무대 전면에는 선동 정치에 능숙한 포퓰리스트들이 자리 잡게 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라클라우 이론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은, 정보와 사실의 구분,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판단 과정이 지식이라는 이름의 전문성 없이는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즉, 일반 국민의 경우 아무리 높은 수준의 민도를 보유하고 있다 해도, 현재와 같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사실인지를 정확히 구분하고 상황을 올바르게 판단하기 결코 쉽지 않다는 의미다. 이러한 환경에서 정보와 사실을 구분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일종의 ‘판단의 길잡이’로서 기능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재래식’ 언론이다.
심리전 효과는 실로 막대하다. 이재명 정권 등장 이후 중단된 대북 확성기에 대해 북한이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 역시, 심리전 위력을 이들이 명확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지적할 부분은, 우리의 대북 심리전 수단인 대북 방송은 중단되었고,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 역시 국회를 통과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대북 심리전 수단이 점진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대남 심리전 수단은 새롭게 추가될 수 있다는 점이 근본적인 문제다. 이러한 ‘비대칭성’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기가 현재로서는 쉽지 않다.
인간 본성의 한 특징은, 자신이 직접 목격한 것은 실재한다고 인식하고, 실재한다고 인식하면 자신이 그 대상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본 것’을 곧바로 자신이 충분히 알고 있다고 간주해서는 안 되는데, 이러한 인식론적 괴리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부터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노동신문 개방 문제는 바로 이러한 이유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1호 (2026.01.01~01.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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