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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삶을 꾸린 여성의 노동은 왜 올해도 인정받지 못했는가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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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숙영의 시선]
한 해 끝에 젠더 평등에 던지는 의문

편집자주

한국일보 기자들이 직접 여러 사회 문제와 주변의 이야기를 젠더적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젠더, 공간, 권력' 등을 쓴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의 글도 기고로 함께합니다.


전국여성노동조합,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전국교육공무직본부로 구성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조합원 등이 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가진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2차 총파업대회에서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저임금 차별 철폐와 학교급식법 개정 및 종합대책 마련, 교육공무직 제도화 등을 요구했다. 뉴스1

전국여성노동조합,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전국교육공무직본부로 구성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조합원 등이 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가진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2차 총파업대회에서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저임금 차별 철폐와 학교급식법 개정 및 종합대책 마련, 교육공무직 제도화 등을 요구했다. 뉴스1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올리버 버크먼은 자신의 저서 '4000주: 당신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2022)에서 현대인의 평균 수명을 80세라고 가정할 때, 이를 1주 단위로 계산하면 인간이 4,000주 정도 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1년 단위로는 약 50주의 시간이 주어진다.

연말, 여성 노동자의 입장에서 본 수많은 의문들


연말을 맞아 올해를 돌아보니, 한국 사회에서 '집단으로서의 여성'과 '집단으로서의 남성'이 올해 50주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젠더 평등의 차원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로 생각이 미친다.

독일의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는 1939년에 쓴 시 '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을 통해 영웅주의 관점에서의 역사 서술을 비판했다. 그는 "성문이 일곱 개나 되는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 책 속에는 왕의 이름들만 나와 있다/ 왕들이 손수 돌덩이를 운반해 왔을까?/ (…)/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 역사의 페이지마다 승리가 나온다/ 승리의 향연은 누가 차렸던가?/ 10년마다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 거기에 드는 돈은 누가 냈던가?/ 그 많은 사실들/ 그 많은 의문들"이라고 질문했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본 이 의문들을 여성 노동자의 입장에서 본 의문들로 바꿔보면 어떨까? 초저출생·초고령화가 무엇보다 긴급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한국 사회에서 올해 약 24만 명의 신생아를 낳거나 기른 이는 누구인가? 가사 노동과 육아로 유급 경제활동에 종사하지 못하거나 제약받는 이는 누구인가? 학교 급식 노동을 비롯해 방과후 돌봄을 제공하는 이는 누구인가? 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환으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을 돌보는 이는 또 누구인가?

여성 노동자의 의문이 해소되는 새해를 향해



지난해 10월 23일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급식 조리사들이 쪄낸 두부를 옮겨 담고 있다. 대구=최주연 기자

지난해 10월 23일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급식 조리사들이 쪄낸 두부를 옮겨 담고 있다. 대구=최주연 기자


올해도 여성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삶을 유지하고 생명을 기르고 생활을 꾸리는 그들의 노동에 사회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9월 성평등가족부가 발간한 '2025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에 따르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남성보다 16.6%포인트가 낮았고, 여성 임금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 수준은 남성의 70.9% 수준에 머물렀다. 임금 노동자 중 비정규직은 여성이 남성보다 120만 명 정도가 많았으며, 여성 가구주 가구의 평균 소득은 남성의 52.5%에 불과했다.

계속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삶·생명·생활을 꾸리는 노동은 왜 올해도 여전히 주로 여성에 의해 저임금으로 수행되고 있는가? 학교 급식 노동자는 왜 '밥 하는 아줌마'로 폄하되며 노동자로 인정받기 어려운가? 학교 급식실에는 왜 '건강'은 없고 '과로'가 넘쳐나는가?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간병 노동자는 왜 하루에 고작 4시간을 자고 월급은 100만 원대인가? 여성이 95% 이상인 요양보호사는 왜 최저임금 수준에서 임금이 결정되는가?


한국 사회를 비롯해 2,000여 년에 걸친 인류 역사는 남성 영웅 승리의 서사에 다름없었다. 하지만 2026년 새해에는 이런 '위로부터의 역사'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역사'에 주목하면 좋겠다. 삶·생명·생활을 꾸리는 여성 노동자들이 없다면 우리 사회가 존재할 수 없음을 기억하여, 그들의 무수한 의문들이 해소되도록 모두가 함께 노력하기를 바란다.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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