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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청와대 시대, 의미와 과제는
성탄절인 25일 아침. 체감온도 영하 6도의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서울 종로구 청와대는 새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청와대 정면 너머로 대통령경호처 직원 수십여 명이 본관을 오가며 막바지 보안 점검에 여념 없는 모습이 보였다. 이삿짐 차량들이 연풍문 옆 출입구를 분주히 드나들기도 했다. 청와대 앞 도로 곳곳에는 ‘광장의 빛으로, 다시 청와대’란 현수막이 내걸렸다.
한국 정치엔 오랫동안 ‘대통령의 연이은 실패가 청와대란 권위적 공간 때문’이란 가설이 팽배했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논리였다. 청와대 탈출을 공언한 대선후보도 많았다. 하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의 용산 이전은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공간 효과보다 대통령 캐릭터 효과가 더 압도적이란 걸 입증했다. 그리고 3년 7개월 만인 29일 0시 봉황기가 휘날리며 다시 청와대 시대가 열린다. 이젠 어느 대통령도 청와대를 떠나겠다고 말을 하기 어려워졌다. 유일한 변수는 세종 집무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 청와대 공간이 갖는 한계는 극복할 수 있을까.
청와대는 크게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을 중심으로 참모진이 근무하는 여민관, 대규모 내·외빈 행사가 열리는 영빈관, 출입기자실이 있는 춘추관 그리고 대통령 관저로 구성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3실장(비서실장·정책실장·안보실장)과 한 건물(여민 1관)에서 근무하기로 했다. 핵심 참모진과의 소통을 강화해,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동시에 업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
1991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을 신축한 이후 역대 대통령은 주로 본관 2층 집무실에서 업무를 봤다. 너무 넓어 보고를 마친 이가 뒷걸음치며 나오다 넘어졌다는 일화까지 있을 정도로 위압적 공간이었다. 결국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은 본관으로부터 500m 떨어진 여민 1관에 임시 집무실을 마련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여민 1관 3층에서 근무했다. 이 대통령 역시 본관 집무실은 정상회담 등 공식 행사에만 활용할 계획이라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다만 용산에서도 대통령과 참모진, 기자단이 한 건물에 모여 있었지만 ‘불통’ 이미지를 지우지는 못했다.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권위적인 리더십에서 벗어나 얼마나 수평적인 소통을 실천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실은 앞으로도 대통령 일정과 국정 운영과정을 온라인 생중계로 적극 공개해 대국민 소통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국무회의와 수석보좌관회의, 부처 업무보고를 사상 처음으로 생중계로 진행하고 있다. 다만 사실상 내부 회의를 공개하는 게 소통이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많이 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며 “다른 생각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언론은 물론 특히 야당과의 만남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도 여야 간 소통 부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는 게 이 교수의 진단이다.
이 대통령이 2030년을 목표로 세종 집무실(관저 포함) 건립을 공약한만큼 머지 않아 청와대가 다시 이삿짐을 싸는 풍경이 재현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대통령은 앞서 “퇴임은 세종시에서 할 수도 있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다시 용산에서 청와대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는데 들어간 비용만 약 1300억원에 달해 혈세 낭비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 대통령이 충청권 행정통합도 이야기하고, ‘5극 3특’ 국가균형발전 전략도 강조해온 만큼 세종으로 언제 이전을 할 것인지, 한다면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도 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 사이에선 그동안 자유롭게 통행하던 청와대 주변 도로에 통제가 다시 강화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이날 청와대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한 관계자는 “주변 경호 인력이 대폭 늘었다”며 “앞으로 청와대 인근에서 천막을 치고 시위하는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지 내부적으로도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청와대 담장을 따라 이어진 인도는 일반 시민의 통행이 제한되고 있었다. 다만 최근 러너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강아지 모양의 달리기, 이른바 ‘댕댕런’ 구간에 포함된 코스는 건너편 인도를 통해 기존처럼 이용할 수 있다. 청와대 인근 주민인 권혁순(서울 인사동·63)씨는 “청와대로 다시 대통령실이 돌아온다니 그동안 탄핵 등으로 어지러웠던 상황이 정리되는 느낌”이라며 “앞으로 대통령이 전보다 숨김없이 소통해갈 거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정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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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중계 횟수보다 경청이 더 중요”
윤건영 |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대변인과 춘추관장을 지낸 박정하(강원 원주갑·재선) 국민의힘 의원은 “언론과 얼마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또 얼마나 귀 기울여 듣느냐가 중요하지, 생중계 횟수를 늘린다고 해서 소통을 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가 청와대 이전을 계기로 온라인 생중계 등을 확대해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데 대한 조언이다. 박 의원은 “생중계는 기자들을 거치지 않고, 결국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바로 전달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한 여민 1관과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상주하는 춘추관이 직선거리로는 약 300m 떨어져 있지만, 차량으로는 2~3분이면 닿는 거리라고 강조했다. “의지만 있다면 소통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취지다.
박 의원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 재임 사례를 들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지인들과 주말 테니스를 마친 뒤 예고 없이 춘추관을 찾아 기자들과 만났던 일화를 소개했다. 박 의원은 “이 대통령은 식사를 마치고 들어오는 길에도 춘추관에 들러, 작은 공간에서 기자들과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고 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또 공식 집무실이 있던 본관과 참모진이 근무하던 여민관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줄이기 위해 여민관 1관에 별도의 집무실을 두기도 했다. 박 의원은 대통령이 비서실장·정책실장·국가안보실장과 같은 건물에서 근무한 데 대해 “회의를 즉각 소집할 수 있고, 이동 중 자연스럽게 대통령과 마주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결국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달린 문제”라며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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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외딴 섬 되어선 안 돼”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초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서울 구로을·재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청와대가 ‘외딴 섬’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은 국민 속에 있어야지, 국민으로부터 떨어진 섬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윤 의원이 우려하는 대목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인해 기존 청와대 관람 범위가 축소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실은 지난 7월 말 청와대 관람을 종료하고 주요 건물 리모델링에 착수한 상황이다.
윤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이 관저를 사용하게 되면 청와대 개방 공간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집무실이 다시 청와대로 이전하더라도, 관저만큼은 계속 개방돼야 한다는 취지다. 1990년 준공된 한옥 형태의 관저는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민간에 전면 개방됐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재임 당시 여민 1관 3층 집무실에서 녹지원과 맞닿은 창문을 열고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던 일화를 소개했다. 윤 의원은 “관저가 폐쇄되면 녹지원을 거쳐 본관으로 가는 동선 외에는 다른 관람 선택지가 거의 없다”며 “관저를 기존대로 개방해 청와대를 업무 공간, 행사 공간, 그리고 지금 수준의 개방 공간이라는 세 축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대통령의 소통 방식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하나는 대통령이 춘추관을 자주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청와대가 국민으로부터 떨어진 섬이 아니라 국민과 호흡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는 “청와대 본관에서 행사를 하다가 대통령이 차량을 잠시 세우고 시민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을 찍고 인사도 하는 장면들이 가능해야 한다”며 “그래야 대통령과 국민이 같은 호흡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위문희·신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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