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아 허시. |
1968년 9월 22일자. |
허시는 당시 윗세·헤세이 등으로도 표기했다. 1969년 허시로 표기한 기사도 있다.
올리비아 허시의 제2작. 1969년 9월 21일자 5면. |
1970년대부터는 일본식 발음인 핫세가 대세를 차지했다. 1969년 8월 국내 개봉 때 영화사에서 ‘핫세’로 표기한 탓에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1969년 8월 5일자 8면 광고. |
“명보극장의 ‘장한몽’의 경우는 150원짜리 2장이 500원씩에, 중앙극장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무려 요금의 두 배인 500원씩에 날개돋친 듯 거래됐다.”(1969년 8월 5일자 8면)
허시는 별세 약 2년 전인 2023년 1월 ‘로미오와 줄리엣’ 촬영 당시 “성 학대를 당했다”며 제작사 파라마운트 픽처스를 상대로 5억달러(약 6400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로미오 역을 맡았던 레너드 위팅도 함께였다.
“소장에서 두 배우는 영화 속 베드신이 사전 고지 없이 나체로 촬영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핫세는 15세, 위팅은 16세였다. 소장에 따르면 당시 감독이었던 프랑코 제피렐리(2019년 사망)는 당초 배우들에게 “피부색 속옷을 입고 촬영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 촬영일에 가까워져선 “몸에 간단한 분장만 하고 촬영할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감독은 또 “나체를 드러내지 않도록 카메라를 배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영화엔 두 배우의 엉덩이와 가슴 등 신체 부위가 노출됐다.”(2023년 1월 5일 자 A21면)
올리비아 허시 별세. 2024년 12월 30일자 A20면. |
소송은 기각됐다. “법원은 영화 속 베드신이 아동 포르노에 해당하지 않으며,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해 보호된다고 판단했다.”(2023년 5월 27일자 A25면)
허시는 지금까지도 줄리엣 하면 떠오르는 배우다. 1996년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 역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호흡을 맞춘 줄리엣 역 클레어 데인스도 있지만 올리비아 허시의 명성을 넘지는 못했다.
부음 기사를 쓴 박은주 에디터는 “복사기는 제록스, 스테이플러는 호치키스, 줄리엣은 ‘올리비아 핫세’였다”며 “당대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는 ‘책받침 여배우’는 이후 피비 케이츠, 소피 마르소로 바뀌었지만, ‘줄리엣=올리비아 핫세’라는 등식은 깨진 적이 없다”(2024년 12월 30일 자 A20면)고 썼다.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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