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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어 읽으시라! 집어 읽으시라!" 시대 문제와 치열하게 싸운 걸작 5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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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회 한국출판문화상 심사 총평]
5개 부문 50권 '2025 올해의 책' 선정
각 부문 대표작 5종 선정 최고상 수여


제66회 한국출판문화상 심사위원들이 14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본심 심사를 하고 있다. 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백민정 가톨릭대 교수,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 홍성욱 서울대 교수, 김수영 한양여대 교수, 박영신 코라초 출판사 대표, 김명남 번역가, 오혜진 문학평론가. 정다빈 기자

제66회 한국출판문화상 심사위원들이 14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본심 심사를 하고 있다. 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백민정 가톨릭대 교수,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 홍성욱 서울대 교수, 김수영 한양여대 교수, 박영신 코라초 출판사 대표, 김명남 번역가, 오혜진 문학평론가. 정다빈 기자


올해로 66회를 맞는 한국출판문화상은 학술, 교양, 번역, 편집, 어린이·청소년의 다섯 분야에 걸쳐 한 해를 빛낸 '올해의 책'을 분야별 10종씩 모두 50종 선정해왔다. 그리고 더욱 세밀한 심사 과정을 거쳐서 이 중 각 분야를 대표하는 최고상 1종씩을 발표한다. 무엇보다 이런 훌륭한 책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수고해주신 여러 저자, 번역자, 그리고 출판계 종사자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학술 부문의 최고상으로 장성규의 '문학의 민주주의'가 선택되었다. 노동자 문학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서 지식인-엘리트 위주의 기존 문학사 서술에 "균열을 내려는 문제의식의 소산"이라고 저자는 본 저술의 성격을 겸손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한국문학사의 역동성을 온전히 복원하려는 최근의 다양한 작업들 속에서 이 책이 탁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데에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교양 부문에는 희정의 '죽은 다음'을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죽음'은 관념일 수 있지만 '죽은 다음'은 사회적 현실이다. 그간 우리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치열하게 기록해왔던 저자가 이번에는 직접 장례 노동의 현장에 뛰어들어 그 냉정한 현실을 담담하게 복원해낸다. 죽음을 둘러싼 저 사회적 풍경은 오히려 우리가 그동안 잘 살피지 못했던 삶의 또 다른 모습이다.

제66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장성규의 '문학의 민주주의', 희정의 '죽은 다음', 조우리의 '4x4의 세계',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가 쓰고 전혜은·제이가 옮긴 '가장 느린 정의', 도서출판 길의 '다석일지'.

제66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장성규의 '문학의 민주주의', 희정의 '죽은 다음', 조우리의 '4x4의 세계',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가 쓰고 전혜은·제이가 옮긴 '가장 느린 정의', 도서출판 길의 '다석일지'.


어린이·청소년 부문에는 조우리의 '4x4의 세계'가 최고상의 자리에 올랐다. 책을 통해서 두 아이의 우정이 눈부시게 성장하고 책을 통해서 두 아이의 세계가 아름답게 확장되는 이 이야기는 '어린이·청소년'이라는 장르를 넘어 연대의 가치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충분한 설득력을 보여주고 있다.

번역 부문에는 '가장 느린 정의'를 번역한 전혜은과 제이, 두 분에게 영광의 대상이 돌아가게 되었다. 돌봄노동과 장애정의를 둘러싼 세밀한 논의들을 정확하고도 뜨거운 우리말로 살려준 번역자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이 수상이 번역이라는 또 다른 '느린 정의'의 실천에 헌신해 온 두 분께 작은 위로와 격려가 되길 바란다.

편집 부문의 최고상은 도서출판 길이 전 3권으로 펴낸 '다석일지'에 돌아갔다. 한국 지성사의 높은 봉우리 중 하나인 다석 류영모의 글과 해제를 두툼한 세 권으로 정리하였다. 다석의 원문과 윤문, 그리고 풀이를 함께 수록한 이 '다석일지'는 우리 사회에 책이라는 매체가 왜 필요한지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놀라운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심사위원단은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이 노작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이번 편집 부문 대상을 수상한 '다석일지'의 주해를 맡은 정양모 신부는 다음의 문장으로 자신의 머리말을 마무리하고 있다. "집어 읽으시라! 집어 읽으시라!" 이 명령문은 중세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을 가져온 결정적인 사건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지쳐 쓰러져 있었을 때 어디선가 "톨레 레게(tolle lege)! 톨레 레게(tolle lege)!" 그러니까 "집어 읽으시라! 집어 읽으시라!"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에 그는 옆에 있던 성경을 무작정 펼쳐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 이후 모든 역사가 바뀌었다.

책은 시대의 다양한 문제들과 치열하게 싸워왔고 역사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왔다. 이번에 선정된 50권의 '올해의 책' 그리고 5권의 최종 대상 수상작들은 그 싸움의 위엄과 가치를 온전히 증명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이 책들에 대해서 예의를 갖출 때이다. 물론 그것은 이 책들을 선택하고 읽고 생각하고 또 토론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저 오래된 문장을 다시 한번 들려드린다. "집어 읽으시라! 집어 읽으시라!"

김수영 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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