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충남 홍성에서 고등학생 A양이 무인 매장에서 아이스크림을 훔쳤다가 신상이 공개된 후 숨진 채 발견됐다. A양은 학교 근처 무인 점포에서 총액 5000원 상당의 아이스크림을 훔친 것으로 알려졌다. 점주는 훔친 사람을 찾겠다며 CCTV 캡처본을 평소 알고 지내던 공부방 대표에게 건넸고, 이 과정에서 캡처본이 번지면서 A양이 망신을 당한 것. 캡처본은 모자이크 처리 등을 하지 않아 금세 신원이 특정됐다. A양은 친구들과 SNS 대화에서 “소문을 내가 어떻게 감당해”라며 극심한 불안을 호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물가 시대, 인건비까지 폭등하면서 문구점·수퍼마켓·세탁소·노래방 등 무인 점포가 크게 늘었다. 알아서 가져가고 계산하라. 기본적으로 양심과 선의에 기대 장사를 하는 셈. 많은 무인 점포가 좀도둑 문제로 골치를 앓는데, A양의 변고가 비화하며 ‘사적 제재’에 대한 갑론을박도 커지고 있다. ‘도둑질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점주가 무슨 권한으로 인민재판을 여나’. 양측이 팽팽하다.
정의 구현인가 인격 살인인가
경찰청에 따르면 무인 점포 내 절도 건수는 2021년 3514건에서 2023년 1만847건으로 3배 정도로 늘었다. 보안 기업 에스원 범죄예방연구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 6월까지 발생한 무인 점포 절도 범죄자 중 10대가 전체의 52%로 가장 많았다. 눈앞의 유혹에 미혹되는 아이들이 많다는 얘기.
고물가 시대, 인건비까지 폭등하면서 문구점·수퍼마켓·세탁소·노래방 등 무인 점포가 크게 늘었다. 알아서 가져가고 계산하라. 기본적으로 양심과 선의에 기대 장사를 하는 셈. 많은 무인 점포가 좀도둑 문제로 골치를 앓는데, A양의 변고가 비화하며 ‘사적 제재’에 대한 갑론을박도 커지고 있다. ‘도둑질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점주가 무슨 권한으로 인민재판을 여나’. 양측이 팽팽하다.
대부분의 무인 점포에는 ‘절도범 찾습니다’, ‘물건 값 100배 청구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인터넷 캡처 |
정의 구현인가 인격 살인인가
경찰청에 따르면 무인 점포 내 절도 건수는 2021년 3514건에서 2023년 1만847건으로 3배 정도로 늘었다. 보안 기업 에스원 범죄예방연구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 6월까지 발생한 무인 점포 절도 범죄자 중 10대가 전체의 52%로 가장 많았다. 눈앞의 유혹에 미혹되는 아이들이 많다는 얘기.
경기도에 사는 박모(44)씨는 지난해 동네 무인 점포에서 아들(12)이 절도범으로 지목돼 곤란을 겪었다.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했다고 해도, 컬러 사진에 드러난 책가방과 옷차림·체형 등으로 금세 누군지 알아챌 수 있었던 것. 박씨는 “점주는 100배 보상을 하지 않으면 경찰에 넘기겠다고 했다”며 “알고 보니 100배 보상 같은 규정도 없고, 아들이 어려 형사 사건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 애가 잘못했고 온 가족이 찾아가 백배 사죄했지만, ‘잘 걸렸다’는 식의 점주 태도가 황당했다”며 “그 문구점에는 늘 그런 ‘현상 수배’가 붙어 있는데 오죽하면 그러겠나 싶으면서도, 애들이 많이 드나드는 시간대에는 최소한의 매장 운영 관리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 B씨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사건 당시 4학년이었던 딸은 12월생이라 만 9세였다. ‘촉법소년(만 10~14세)’에 해당하지 않는다. B씨는 “딸이 3만원짜리 캐릭터 카드를 집어 왔는데, 처음에는 점주가 경찰에 넘기겠다고 으름장을 놓더니 아이 나이를 알고는 당초 불렀던 액수보다 확 낮춰서 합의했다”고 했다.
절도범이 10살 안팎의 어린이인 경우가 많고 보상에 대한 명확한 규정도 없다. 그렇다 보니 합의 과정에서 잡음이 일곤 한다. ‘학교에 알리겠다’며 게시글을 내리지 않고 터무니없는 합의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이가 저지른 잘못에 부모들은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최근 인천에서는 8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정상 결제했는데도 절도범으로 몰려 얼굴까지 공개된 초등학생의 부모가 해당 점주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일도 있었다.
손님인가 빌런인가
무인점포 점주들의 고충도 크다. 자영업자들이 모인 카페에서는 ‘무인점포 절도 대처법’ ‘좀도둑 퇴치법’ 같은 글이 자주 공유된다. 무인 아이스크림점을 운영하는 한모(65)씨는 “아이가 실수한 것이라고 눈감아줬더니 다음번에는 친구들까지 몰고 와 털어가더라”며 “동네에 ‘도둑 맛집’으로 소문나지 않기 위해 엄격한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건비를 아끼는 만큼 소액의 피해는 각오하고 시작한 사업이지만, 예상보다 타격이 작지 않다는 것.
최근에는 한 초등학생이 무인 문구점에서 9차례에 걸쳐 10만원 상당의 물건을 훔쳐간 것을 점주가 직접 적발했는데, 아이 부모의 적반하장식 대응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부모는 ‘(피해액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매출·매입 장부를 보여달라’고 문자 폭탄을 보내거나, ‘훈육을 위해서’라며 아이가 500원씩 점주에게 입금해 갚아나가겠다고 일방 통보했다.
점주들은 현상 수배와 경찰 신고라는 원칙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점주가 부담해야 할 관리·경비 책임을 한정된 치안 서비스에 전가하는 지점이 있고, 사적 제재 공방은 송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로 인한 경찰력·행정력 낭비도 무시할 수 없다. 서로의 신뢰로 채워져야 할 공간에서, 사장도 손님도 서로에게 ‘빌런’이 되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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