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주 국립순천대 석좌교수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의 실증 연구는 부자가 더 부유해질 때 오히려 성장률이 떨어지는 경향을 지적했다. 상층의 성공이 자동으로 하층의 삶을 개선시키지 않으며, 부의 혜택이 아래로 스며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낙수효과를 허상이라 일축했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신자유주의적 낙수 정책이 가난한 이들을 돕지 못한다고 우려했다.
우리의 경험도 이를 보여준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이명박 정부는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며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췄다. 낙수효과를 노린 감세였다.
결과는 어땠나.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주요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은 2009년 320조원 수준에서 2013년 590조원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실물 투자는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세금 감면분을 투자나 고용이 아닌 사내 적립으로 돌렸고, 기대했던 투자 확대와 일자리 증대 등의 낙수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분배도 개선되지 않았다.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하위 소득자 20% 대비 상위 소득자 20%의 가처분소득 배율은 2012년 8배로 확대됐다.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혜택이 커진 반면,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에게 돌아가는 몫은 줄어들었다. 낙수 중심의 성장이 사회적 불평등을 확대한 셈이다. 커진 불평등은 내수 위축과 사회 갈등을 불러와 성장의 지속성마저 위협한다는 것이 위에서 언급한 실증 연구 결과다.
불행하게도 불평등과 양극화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소득 상위 10% 가구와 하위 10% 가구의 연평균 소득 격차는 계속 확대돼 2024년 2억원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도 점차 벌어지고 있다.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가 OECD 국가 중 가장 크고, 노인 빈곤율도 OECD 국가 중 1위다. 이러다 보니 '세계 행복 보고서 2023'은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가 OECD 38개 국가 중 35위라고 한다.
우리는 성장을 말한다. 혁신도 강조한다. 그런데 누구를 위한 성장, 누구를 위한 혁신이어야 하는가. 물론 혁신하고 성장해야 한다. 성장이 우선이다. 하지만 진정한 성장은 소수의 성공이 아닌 다수의 발전으로 평가돼야 한다. 구성원 모두가 성장의 열매를 공유하는 것이 조화로운 성장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이다. 성장과 사회적 조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 이것이 새로운 경제질서이고 진정한 경제 혁신이다. 새로운 혁신의 시대가 활짝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백승주 국립순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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