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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 책과 미래] 인문의 시간, 초월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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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한 해가 저무는 중이다. 바깥으로 향했던 눈을 거두고 시선을 돌려서 자기를 돌아볼 때다. 자기를 살피고 성찰하는 이유는 '오늘의 나'에 그대로 머무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일찍이 공자가 설파했듯, 인간은 한순간도 나(己)에 머무르면 안 된다. 끝없이 나를 갈고닦고 쪼아 더 나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습관의 존재다. 어제대로 오늘을 또 한 번 사는 걸 좋아한다. 생각은 더욱 그러하다. 크기는 작으나 에너지를 많이 쓰는 뇌는 사유를 싫어한다. 어느 한군데 집중하지 못하는 산만함, 빠르게 훑고 대충 판단하는 어림짐작에 길들어 있다. 자기 행위의 의미와 가치를 따지기보다 적당히 흘려보내면서 슬렁슬렁 사는 데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

그래서 문명은 시간에 문턱을 뒀다. 오늘 같은 내일이 지속되지 않게 새로운 해가 뜬다고, 새로운 시간이 온다고, 그러니까 새로운 인간이 되라고 다짐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 통과의례의 날엔 물리적 시간을 살면 안 되고, 자기를 살피고 주변을 돌보는 인문의 시간을 살아야 한다. 한 해의 마지막은 그런 의미다. 그 목적은 지금과 다른 나를 초대하는 것, 즉 초월이다.

'초월과 인식 가능성'(문예출판사 펴냄)에서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초월을 "끊임없이 새로움이 분출하는 것"이라고 부른다. 초월은 지금까지의 나, 익숙하고 동일한 나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멈추는 일이고, 그 예측 불가능한 새로움으로부터 이제껏 없었던 의미를 생성하는 일이다.

공자가 자기를 넘어 타인을 살피는 마음, 즉 인(仁) 속에서 나를 군자로 바꿀 가능성을 발견했듯, 레비나스 역시 나만 생각하던 의식이 타자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데서 초월의 가능성을 찾아낸다. 사랑은 둘을 하나로 융합하지 않고, 하나(나)를 넘어 둘(연인)로 존재하게 한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둘이 된다." 새 삶을 살려면 사방을 살펴서 '오늘의 나' 속에 낯선 타자를, 하다못해 '내일의 나'라도 초대할 줄 알아야 한다.

레비나스는 초월을 "하늘의 지혜가 땅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유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kenosis)이 그 모델이다. 인간을 '사랑'한 예수가 신적 존재를 버리고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듯, 우리 역시 타자를 염려하고 그들의 고통과 함께하며 그 삶에 온전히 뛰어들 때 새로운 나를 이룰 수 있다. 아이의 낯선 삶에 뛰어들 때 연인은 부모가 된다. 타인을 내 삶에 초대하고 그들과 함께할 때 오늘의 나는 새로운 인간이 된다. 남은 며칠, 자기를 살피고 타인을 돌아보며 새로운 나를 찾는 초월의 시간으로 보냈으면 좋겠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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