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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긱스와 비슷해” 로버트슨 사망, 향년 72세…'전 세계 애도’

스포티비뉴스 박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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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박대성 기자] 축구계의 ‘피카소’라고 불렸던 존 로버트슨이 하늘의 별이 됐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26일(한국시간) “한때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에게 ‘우리 경기의 피카소’라고 불렸던 스코틀랜드, 노팅엄 포레스트, 더비 카운티 윙어 로버트슨이 향년 72세로 세상을 떠났다”라고 알렸다.

로버트슨은 노스래너크셔 뷰파크 지역에서 태어나 드럼채플 아마추어스에서 뛰었고, 스코틀랜드 유소년 대표팀을 거쳐 1970년 5월 노팅엄 포레스트에 입단해 그해 말 데뷔전을 치렀다.

클러프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톱 클래스 선수로 도약했다. 클러프 감독 부임 이후 팀 핵심 선수로 자리했고 1976년 12월부터 1980년 12월까지 243경기 연속 출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1978년 리그컵 결승 재경기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페널티킥 결승골을 넣으며 가치를 입증했다. 하지만 1983년 더비 카운티 이적 당시 잡음이 생기면서 클러프 감독 포함 코칭 스태프와 불화가 생겼다.

더비에서의 초반 부상은 그의 활약에 제동을 걸었고, 1985년 포리스트로 복귀했지만 이전과 같은 기량을 되찾지는 못했다. 이후 그는 세미프로 팀인 코비 타운, 스탬퍼드, 그래섬 타운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노팅엄 포레스트 시절이 가장 찬란했다. 로버트슨은 1·2부 리그 우승, UEFA 슈퍼컵, 풋볼 리그컵 2회, 1978 FA 채리티 실드, 앵글로-스코티시 컵을 들어 올렸다. 1980년 함부르크를 꺾고 유러피언컵 2연패를 달성했을 당시 결승골을 넣은 주인공이다. 그 전 시즌 말뫼를 상대로 한 결승전에서는 트레버 프랜시스의 결승골로 이어진 크로스를 올리기도 했다.


노팅엄 포레스트 시절 주장 존 맥거번은 로버트슨 활약상을 회상하며 “라이언 긱스 같지만, 한쪽 발이 아니라 양발 모두 훌륭했다. 솔직히 능력은 더 뛰어났다”고 말했다. 클러프 감독은 “지저분하고, 몸 상태도 안 좋고, 의욕도 없는, 시간 낭비 같은 선수”라고 표현하면서도 “내가 본 선수 중 가장 뛰어난 크로서 중 한 명이고 브라질이나 이탈리아 선수들과 비교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패스 능력을 가졌던 선수”라며 엄지를 세웠다. 2015년에는 노팅엄 포레스트의 설문조사에서 역대 가장 사랑받는 선수 1위로 선정됐다.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는 1981년 잉글랜드전 결승골을 기록했고, 1982년 월드컵 본선에서는 뉴질랜드를 상대로 득점했다. 그는 대표팀에서 총 28경기에 출전했다.


은퇴 후에는 노팅엄 포레스트 시절 동료였던 마틴 오닐 감독의 수석 코치로 활동하며 위컴 원더러스, 노리치 시티, 레스터 시티, 셀틱, 애스턴 빌라에서 함께했다. 코치로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0년 애스턴 빌라는 리그컵 결승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로버트슨의 부고 소식이 전해지자 축구계 전체가 애도했다. 노팅엄 포레스트 스타 스탠 콜리모어는 “포레스트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레스터 시절 저의 코치였다. 제가 만난 가장 사랑스럽고 마음씨 좋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너무나 슬프다”라고 말했고, 저널리스트 헨리 윈터는 “노팅엄 포레스트 팬들에게 늘 기쁨을 줬고 상대 풀백들에게는 공포였다. 두 번의 유럽 챔피언, 위대한 선수이자 훌륭한 인품을 지닌 선수였다. 그의 가족, 친구, 팀 동료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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